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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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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이슈 진단] 마이코플라즈마와 붕괴된 소아의료체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2.10 15:22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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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걸어다니는 폐렴’으로 잘 알려진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중국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유행이 시작됐다. 4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감염경로는 물론 증상·치료법은 잘 알려져 있는 교과서적인 질병이다.

일반적으로 폐렴은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에 반응이 좋은 편이다. 문제는 내성균과 다중감염이다. 소아 입원환자를 주로 보는 아동병원에서 체감하고 있는 유행 상황은 질병관리청의 발표와 차이가 있다.

전형적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많다. 통상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은 항생제 치료에 반응이 좋다. 하지만 ‘이 나이에 폐렴이 이렇게 심한가’ 싶은 아이들, 예상보다 증중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아이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빨리 진행되고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내성균주가 나왔다는 보고서가 올라오는 경우도 흔하고, 중복감염이 나타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그 가운데 가장 심했던 경우는 마이코플라즈마, 아데노바이러스, 코로나19에 중복 감염됐던 어린이였다. 중복감염 사례는 많다.

의학도가 되어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같은 병이 오더라도 개체의 면역력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병을 이겨내는 힘이 다르다’ 이다. 한국의 의료체계를 사람이라 친다면 유례 없이 허약한 상태다.

올해 늦가을과 초겨울 기간 마이코플라즈마의 유행 양상이 예년과 똑같으니 안심하라는 말은 진정 믿고 싶다. 전국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의 75%가 작동을 못하고 있고, 입원을 포함한 배후진료가 붕괴됐다.

그나마 작동하고 있는 아동병원 병상은 거의 만실이다. 위중증이 발생하면 감당이 안된다.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중 인공호흡기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이름만 중환자실이라 아동병원에서 보내는 중환자는 받을 수가 없다. 대학병원은 파격 조건으로 소아과 의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아동병원은 눈만 껌벅껌벅 하다가 손발이 잘려나가고 있다. 서울·천안·대전·부산·광주·거제 등 지역마다 상황은 다 다르다.

우리가 치료를 하다 보면 빈사상태의 환자라도 상태를 먼저 평가하고, 생존해 있는 장기는 더 망가지지 않게 조심 조심 치료한다. 그 장기가 회복되면 그 옆의 장기에도 피가 돈다. 그렇게 한 개씩, 한 개씩 해결하다 보면 중환자실에서 1년을 누워있던 환자가 의식이 돌아오고 병동 복도를 걸어다니는 기적이 일어난다.

소아필수의료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팔·다리·심장이 시원찮다고 싹 새 것으로 갈아넣을 시간이 없다. 조심 조심 필요한 부분에 수혈해 하나씩, 둘씩 살려낸 다음에 정말 돈 많고 시간 있을 때 시스템을 바꾸는 혁신이라는 모험도 해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소아필수의료체계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혁신적 이식수술을 감당할 ‘체력이 안된다’. 사실 이식할 의료진(소아과의사)도 없다. 그냥 돌팔이들이 칼날을 들이대고 난도질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런 난맥상은 결국 이 나라의 투표권 없는 어린 국민들이 감당하게 될 가슴 아픈 ‘후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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