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박기범 기자] 신용평가회사들이 내년 증권업황이 올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PF 위기가 현실화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12일 한국기업평가는 "내년 증권업의 사업환경은 비우호적이고, 실적은 올해 대비 저하되고, 신용등급 방향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한기평뿐만 아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지난 6일 내년 전망을 발표하며 같은 의견을 냈다.
내년 업황 악화의 키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부동산 개발 단계에 금융은 빠질 수 없다. △토지매입계약 △잔금 납부 △착공 △분양 및 준공 △입주 단계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마다 적절하게 자금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부동산 개발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 중 가장 위험한 단계는 토지 매입을 위한 계약금 대출과 잔금 납부를 위한 브릿지론이다. 잔금이 제대로 납부되지 않거나 용도 변경을 받지 못한다면 담보 여력이 부족해 원금을 원활하게 회수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리스크가 크기에 은행들은 브릿지론 단계에 대출을 진행하지 않지만, 증권사·캐피탈사·저축은행 등은 리스크를 반영한 고금리 대출을 진행해 수익을 얻는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리스크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강 국면에는 리스크가 문제가 되곤 한다. 건설업 특성상 토지 매입부터 완성까지의 기간이 장기간이라 그 사이 경기흐름이 바뀌면 자금을 대여한 곳들도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올해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는 증권사가 없을 것이란 전망에 부동산 PF 관련 실적 부진도 CFD(차액결제거래), 주식시장 침체 등과 함께 큰 몫을 했다. 부동산업황이 좋던 2021년의 경우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등이 조 단위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올해 위기는 전초전이란 의견이 강하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상무는 "금융시장은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거품이 충분히 빠진 반면 분양가격은 아직 다 빠지지 않았다"면서 "올해는 브릿지론의 문제를 만기 연장 등으로 이연 시켰으나 내년에는 올해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섭 한기평 연구원은 "실물경기 침체 및 PF 부실 우려로 증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보유 금융자산의 손실위험도 증가할 것"이라면서 "주택매매가격 하락세는 둔화되겠으나 준공 후 미분양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상업시설 및 물류센터 시장도 위축되면서 부동산 PF 익스포저에 대한 자산건전성 관리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서 그는 "올해 대규모 대손비용을 반영했으나, 잠재 부실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내년에도 추가 충당금 적립 및 손상차손 인식이 예상된다"면서 "업황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PF리스크 확대로 신용도 하방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브릿지론 관련 대출 비율이 높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혁준 나신평 상무는 "고금리가 장기화될 경우, 브릿지론 중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저축은행, 캐피털사, 증권사 중 외부지원가능성이 열위한 회사는 부동산 PF 잠재부실 현실화 시 대주주 변경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주요 증권사가 실적악화로 매각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전망을 낸 것이다.
PF리스크 현실화는 내년 여러 산업의 키가 될 전망이다. 신평사는 △저축은행 △부동산신탁 △할부리스 △건설업 등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건 건설업으로 보인다. 한기평은 업종별 제목을 통해 고통의 정도를 어렴풋이 암시했다. 저축은행업의 경우에는 담기지 않았고, 할부리스는 ‘드러난 부동산 PF 규모’ 정도로 정제된 제목을 썼다. 반면 증권업은 ‘PF리스크 본격화’, 부동산신탁은 ‘적신호’ 등 워딩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건설업은 ‘생존’이라는 단어를 쓰며 위기감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