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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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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화상 키르기스스탄 소년, 한국서 미소 되찾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2.19 17:24

얼굴 절반 3도 화상···현지서 수술 못해 ‘은둔’



서울아산병원 의료봉사단 도움으로 국내입국



최종우 교수, 이마 피부 이용 코 재건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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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소년 알리누르와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성공적인코 재건수술을 기념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에너지경제신문 박효순 메디컬 객원기자] 서울아산병원은 19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도중 만난 안면화상환자 알리누르(8세)가 한국에서 화상 흉터를 제거하고 이마 피부를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2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이 소년은 건강한 모습으로 오는 20일 귀국을 앞두고 있다.얼굴 절반에 입은 화상으로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해오던 그가 미소를 되찾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얻게 되었다.

2021년 6월,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지역의 시골 마을 허름한 집에 살고 있던 알리누르 가족은 집 보수에 쓰일 화학용 액체를 끓이고 있었다. 가족들이 잠깐 방심한 사이, 아무 것도 모르는 6살 아이는 장난 삼아 아궁이에 돌을 던졌다. 팔팔 끓고 있던 뜨거운 화학용 액체는 사방으로 튀며 알리누르의 코, 이마, 눈 등 얼굴 전체를 덮쳤다.

사고로 인해 알리누르는 얼굴 중안부에 3도 화상을 입었으며, 화상으로 인한 붓기로 첫 3일간은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한 화상 후유증으로 코 모양이 변형되는 영구적인 기형이 생겼다. 급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은 집에서 40㎞ 가량 떨어진 곳이다. 화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아니지만 알리누르 가족은 희망을 안고 급히 병원을 찾았다.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으며 다행히 시력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열악한 의료환경 탓에 병원에서는 흉터가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간단한 치료만 해줄 뿐이었다. 알리누르 가족은 매번 월급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비용을 부담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알리누르의 얼굴 흉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현지 의료진은 만 14세가 넘어야 흉터를 치료하는 수술이 가능하다며 8년 넘게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알리누르는 화상 부위가 햇볕에 닿으면 매우 가려운 데다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점차 바깥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외부 세상과 벽을 쌓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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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와 관련 의료진이 알리누르의 성공적인 치료를 기념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그렇게 2년가량을 보내건 중 한국에서 온 의료진이 무료 진료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아산병원 해외의료봉사단이 7월 16일부터 3일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지역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온 것이다. 의사 15명, 간호사 22명 등 총 46명의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참여했으며, 3일간 2500여 명의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에서 알리누르를 진료한 서현석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화상 부위가 얼굴인 만큼 아이의 기능적, 외형적, 심리적 부분까지 고려해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번의 수술로 끝나지 않는 고난도 수술인 만큼 한국으로 이송해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생 얼굴의 흉터와 함께 살아야한다며 절망했던 알리누르 가족은 세계적으로 의료기술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고민도 하지 않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지난달 9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알리누르는 수술에 필요한 모든 정밀검사를 받았고, 수술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4일 후인 13일 최종우 교수팀은 알리누르의 이마피판을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1차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화상 흉터 조직을 제거한 뒤, 얼굴과 가장 비슷한 색깔과 재질을 가진 이마 피부를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이후 3주간의 생착 기간을 가진 다음 이번 달 6일 이식한 피판과 이마와의 연결 부위를 분리하는 2차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식한 피판이 3주간 생착되어 화상을 입은 피부에서도 정상적이고 독립적으로 혈액이 흐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리누르의 치료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알리누르는 "서울아산병원 선생님들이 예쁜 얼굴을 다시 갖게 해주셨으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고, 어른이 되면 세계지도에서 봤던 나라들을 여행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서울아산병원 해외의료봉사단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이념 아래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쳐왔으며, 그동안 14개국에서 53회의 봉사활동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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