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왼쬑)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에너지경제신문 박기범 기자]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을 품기 위한 자금조달 과정이 본격 시작됐다. 대규모 유상증자와 인수금융 등이 요구되다 보니 투지은행(IB) 업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며 과거 웅진의 코웨이 인수전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당시 웅진그룹은 지금의 하림그룹처럼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운 후 코웨이를 인수했으나 3개월 만에 코웨이를 포기해야만 했다.
지난 19일 HMM은 최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하림그룹의 계열사 팬오션과 사모펀드 운용사(PEF)인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이제 하림그룹은 계약서를 미세조정(마크업)하고, 약 6조 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해 주식매매계약(SPA)이나 주주간계약(SHA) 체결하면 국적선사인 HMM을 인수하게 된다.
◇ 웅진의 코웨이 인수 과정과 싱크로율
하림그룹의 HMM 인수 환경은 웅진이 코웨이를 인수할 당시 상황과 비견된다 △새우가 고래를 인수한다는 점 △인수 주체가 계열사인 점 △대규모 인수금융 및 유상증자를 시도한다는 점 등이 비교의 근거다.
▲출처/한국신용평가 |
2019년 3월 웅진그룹은 4000억원의 자기자본과 1.6조원의 외부자금을 조달해 ‘렌털업계 1위’ 코웨이의 지분 22.17%를 1.68조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당시 인수금융을 중심으로 문제가 발생, 3개월 만에 매물로 내놓았고, 2019년 말 넷마블이 코웨이를 인수했다.
당시에도 ‘새우가 고래를 인수한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2018년 말 연결 기준 (주)웅진의 자산총액은 7598억원으로 코웨이의 2조3789억원에 크게 밑돌았다. 하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 3분기 말 연결 기준 하림지주의 자산 총계는 13.8조원으로 HMM의 26.5조원보다 절반 수준이다. 비율적인 측면에서는 웅진과 코웨이가 더 차이가 나지만, 절대적인 규모 면에서는 하림지주와 HMM이 더 크게 차이가 난다.
재무 여력이 부족한 탓에 계열사가 인수 주체가 되는 점도 유사하다. (주)웅진은 계열사가 인수했음에도 신용등급이 반년도 지나지 않아 BBB+에서 BBB-로 두 단계나 하락하기도 했다.
하림 지주의 경우, 인수전 초기이기에 신용도에는 변화가 없지만 인수주체가 될 여력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하림지주는 차입금의존도가 50%에 육박한다. 빚이 자산의 절반 수준에 이르다 보니 추가 차입 여력은 제한된다. 또 총 사업비 6조 3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양재동 개발사업의 주체이기에 실탄도 비축해놔야 한다.
대규모 유상증자와 인수금융이 요구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당시 웅진씽크빅의 자체자금은 900억원수준에 불과했다. 웅진씽크빅은 유상증자를 통해 890억원을 조달했고, (주)웅진의 출자를 통해 2200억원을 조달, 총 4000억원을 마련했다. 나머지 1.6조원은 차입했다. 인수대금에서 자체자금은 5% 수준에 불과했다.
팬오션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4600억원의 현금을 바탕으로 6.4조원을 마련해야 한다. 인수대금에서 자체자금의 비율은 7%로 웅진과 대동소이하다.
대규모 유상증자가 필요한 환경도 마찬가지다. 당시 웅진씽크빅은 발행주식 3462만주보다 1.2배 많은 4200만주를 발행했다. 팬오션도 시가총액 수준으로 신주를 발행한다면 웅진씽크빅와 대동소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상증자 당시 웅진씽크빅의 주가. 출처/팍스넷 |
대규모 유상증자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져 계획대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웅진씽크빅은 당초 1690억원을 조달하고자 했으나 890억원 조달에 그쳤다. 그리고 이는 차입 비중 확대로 이어진다. 웅진그룹은 (주)웅진이 차입 비중을 확대하고 출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결국 이 선택은 그룹사 전반적인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졌고, 인수금융에서 문제가 발생해 3개월 뒤 재매각이란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IB업계 관계자는 "하림그룹이 대규모 유상증자의 정당성을 주주들에게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면서 "웅진 그룹도 코웨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장밋빛 미래를 꿈꿨고, 윤석금 웅진 회장이나 강덕수 STX그룹 회장도 한 때는 M&A의 귀재였고 신화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룹사의 사세가 꺾인 이후에는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면서 "대규모 인수합병은 사세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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