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6일 오전. 모 대형금융사 임원의 입에서 "당했다"는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웅진이 ‘워크아웃’ 대신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당시 웅진은 극동건설의 부실이 계열사 전체로 전이되면서 그룹이 존속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웅진은 ‘워크아웃’을 검토했으나 법무법인 태평양의 조언에 따라 기습적으로 ‘회생’을 신청했다.
과거 태평양은 웅진그룹에 왜 워크아웃 대신 회생 신청을 추천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극동건설만 포기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생계획안이 실행되면 필연적으로 대주주 무상감자와 같은 절차는 거치겠지만 금융채권 뿐만 아니라 상거래채권 등 모든 채권이 조정된다. 또 회생계획안이 실행되기 전까지 기존 주주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어 긴급한 사안도 처리할 수 있다.
반면 워크아웃은 금융권의 채권자가 주체가 되어 신청한 기업을 공동관리한다. 금융권의 채권자들은 주채권은행을 설정하는데 산업은행이 맡는 경우가 상당하다. 산업은행은 국내에서 대기업 채권 회수 경험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역시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이다.
관리단은 경영권을 쥐고 그룹사를 움직이게 된다. 관리단은 금융채권의 조정은 있겠지만 회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한다. 더욱이 금융채권만 조정 대상이다 보니 상거래채권, 우발부채 등은 조정하지 못해 관리단의 선택지는 좁다.
태영그룹은 △국내 유일 민영 지상파 방송사인 ‘SBS’ △국내 시공순위 16위의 부실건설사 ‘태영건설’ △매년 2000억원 이상 버는 종합환경기업 ‘에코비트’ △골프장 5개, 워터파크 등을 보유한 종합 레저 기업 ‘블루원’ 등이 주요 계열사다. 이 중 핵심 계열사는 SBS다. 미디어는 본연의 실적 뿐만 아니라 타 계열사와의 시너지도 상당하다. 대통령과의 소통부터 프로파간다도 가능하기에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청와대출입 1진 기자들이 대통령 순방 때 오너들의 ‘소원’을 전달하고 있는 건 이젠 공공연한 사실이다.
태영그룹은 워크아웃을 선택했다. 키를 관리단에 넘기며 확률적으로 SBS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태영건설을 지키려다 그룹이 와해될 수도 있는 확률이 생겼다. 웅진은 회생 신청 전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던 코웨이를 제외하고 다른 주요 계열사는 지켜냈다. 물론 평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반면 태영은 평판은 살렸지만, 최악의 경우 핵심계열사인 SBS를 시장에 내놓아야 할 수 있다. 태영그룹에게 SBS는 자산이 아니라 추억이 될 수 있다.
태영그룹이 이번 어려움을 꼭 잘 헤쳐나가길 기대한다. 하지만 "태영그룹 임원들은 전반적으로 안이하다"는 모 금융사 전 임원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