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 후 약 3년5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총수 부재' 등 다양한 형태로 발생할 수 있는 사법리스크를 일단 해소하게 됐다.
◇ 법원 “공소사실 모두 범죄 증명 없다"···미전실 수뇌부도 모두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삼성그룹 미래전략살(미전실) 최지성 전 실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 장충기 전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지난 2020년 9월 1일 기소됐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다. 검찰의 구형은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이었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당시 그룹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 격인 합병 삼성물산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제일모직의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낮추기 위해 이 같은 부정행위에 관여했다고 봤다.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 '사법리스크' 급한 불 꺼···삼성그룹 대규모 투자 등 결정 기대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급한 불'을 일단 끄면서 삼성 계열사 경영 관련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할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전쟁, 기후위기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상당한데다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기술에 대한 변화 속도가 빠른 상황이라 내실 다지기와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태다.
삼성그룹은 그간 과거 미전실 사태 등 사법리스크를 우려해 계열사가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경영 활동에 다소 소극적으로 움직여왔다. 컨트롤타워 자체가 없는데다 이를 새로 만들 경우 과거 미전실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그룹은 최근까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3개사가 각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계열사들을 관리했다. 시장에서 일찍부터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된 가운데 이번 무죄 판결로 이에 대한 명분까지 쌓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대형 인수합병(M&A) 관련 윤곽이 조만간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성된다. 미전실 규모이 조직이 없어 삼성그룹 전체의 미래를 책임질 대규모 M&A 작업은 쉽게 추진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재판에 계속 참석·준비하며 시간을 쓴 것도 일정 수준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하만을 인수할 당시 80억달러(당시 환율 약 9조 3760억원)을 들여 사들였지만 이후 움직임이 둔해진 상태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형 M&A를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