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실과 맞지 않고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무분별한 규제 입법을 막기 위해서는 의원발의 법안에 대한 사전적인 규제영향 분석과 심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규제개혁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 한국규제학회와 공동으로 14일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국회 규제입법 현황과 입법절차 선진화 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정부 발의 법안은 국회 제출에 앞서 규제의 사회적 편익과 비용을 검토하는 규제영향분석을 거쳐야 하는데 의원입법은 의원 10명의 찬성만 있으면 법안 제출이 가능하다"며 “규제는 기업 경영과 국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의원입법 규제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와 심사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18대 국회부터 이미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심사 논의가 시작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규제영향분석 절차를 도입할 것을 수 년 째 권고하고 있다"며 “좋은 법률을 만드는 것이 국회 책무인 만큼 입법안의 부작용을 심의 단계에서 미리 점검해 입법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은 “국회의원의 활발한 입법 활동이 사회문제 해결과 국민생활 개선에 일조하지만 규제 양산의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며 “국회입법조사처가 입법영향분석제도를 도입해 입법의 품질을 높이고 국회 신뢰를 높이는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준석 한국규제학회회장은 “국무총리 산하 규제혁신추진단도 운영 중이고 각 부처도 개별규제 개선에 노력 중이나 이미 실행 중인 규제는 없애기 어렵다"며 “규제 입법 전(前)단계에서의 규제영향평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날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이민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입법 규모 전반에 대한 총량 관리가 필요하며 △국회법 제79조4(의안에 대한 규제영향평가자료 등의 제출)를 신설해 중요 규제 입법 시 규제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규제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단기간에 정착되기 어렵고 국회 입법권 침해 논란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사후적으로 행정부를 통해서 규제영향평가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차선책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규제의 재검토 시기를 규정하거나 △규제가 신설·강화되고 일정기간(최소 3년)이 지난 이후 사후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해서, 규제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배관표 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교수는 행정규제기본법상의 규제 신설의 원칙이 추상적이고 불분명해서, 이를 구체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규제 법정주의의 역설'도 지적했다. 한국은 '규제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규제법정주의 원칙 때문에, 규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률안 발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의원들의 의정 평가를 발의 법안 수로 평가하는 관행까지 더해져 의원발의 규제가 남발된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과 영국은 법률과 규제를 구분하고 있다. 법률에는 규제의 목적과 권한 위임사항 등 포괄적 내용만 담고 세부 규제는 하위법령에 두거나 따로 규제기관(부처)이 만든다.
강영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겸임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에서 이혁우 배재대 교수는 “현재 국회법상 상임위원회 의결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를 생략할 수 있다"며 “공청회 생략에 대한 요건을 명문화해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공청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입법 관행을 쇄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민창 조선대 행정복지학부 교수는 규제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총계 분석 없이 규제가 입법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면서 입법을 위한 기초 절차로서 규제영향평가가 꼭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복우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장은 국회의 입법 심사가 시행령 이하 단계까지 미치기 어려운 문제를 지적했다. 통상 세부 규제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는데, 시행령·시행규칙에 담긴 규제의 범위나 대상은 국회 입법심사 단계에서 예측·파악이 어렵다는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