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벌어진 전쟁이 개전 2주년을 앞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쟁 발발 2주년을 불과 4일 앞둔 20일(현지시간) 전황은 '시간은 푸틴 편'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일 정도로 우크라이나가 밀리는 듯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로 꼽히는 아우디이우카 장악을 선언하며 기세를 올렸다. 애초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세력을 독립시켜려 했던 푸틴 대통령 목표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이다.
개전 초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결사 항전' 태세에 '며칠이면 전쟁을 끝낼 것'이라는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후 우크라이나는 대반격에서 공언과 달리 실패에 가까운 저조한 성적을 냈고, 러시아에 빼앗긴 동부 영토 탈환이 사실상 요원한 상태다.
병참 역시 우크라이나 탄약고는 계속 부족한 상태고 서방이 약속한 F-16 전투기 지원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전사자 수가 급증하는 등 병력 부족도 심화중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저녁 공개된 화상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예비군을 최대로 집결시킨 최전선 여러 곳에서 상황이 극도로 어렵다"며 “그들(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지원이 지연되는 것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공세 국면 등에서 무기와 병력을 소모했던 러시아는 북한을 통해 활로를 찾았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월 이후 러시아에 100만발 이상의 포탄을 공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연말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발사한 북한산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최소 24발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정세적으로도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 보다 여유로운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 집단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개전 초 러시아가 추후 동맹국을 공격할 가능성에 결집했다.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가 나토 회원국에 신규 가입한 것도 역시 유럽 내 러시아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런 기류에는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최대 지원국인 미국부터 '반 지원' 여론에 힘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입김'이 공화당 강경파에 작용하면서 의회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처리도 지연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 밀려 우크라이나가 '잊혀진 전쟁'을 치르게 될 공산이 더욱 커졌다.
최근에는 러시아 인접국인 폴란드에서조차 '반 우크라이나' 여론이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침공으로 흑해를 지나는 주요 무역 경로가 막힌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를 통해 육상으로 교역해왔는데, 폴란드 농민들과 운송업계가 저렴한 우크라이나 농산물 유입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폴란드와의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정상적이거나 평범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은) 매일 연대가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서방 언론 인터뷰에 나서 부쩍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 극우 논객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패배를 안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대조적 상황은 국내 정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푸틴 대통령은 내달 치러지는 대선에서 5선 연임 고지를 일찌감치 예약,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기반을 한층 공고히 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한때 '충견'이었다 등을 돌리며 쿠데타를 일으켰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의문의 추락사 한지 약 5개월 만에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도 치근 시베리아 감옥에서 의문사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대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위협 요소가 제거된 셈이다.
국제사회는 이런 과정에 엄청난 비판을 제기하고 있지만, 애당초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자신에 대해 전쟁 범죄 혐의로 발부한 체포영장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골리앗' 러시아에 맞서 항전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출신 무명 지도자에서 일약 세계적 '영웅'으로 떠오르며 국제무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근래에는 상황이 다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년 전 키이우가 러시아에 포위됐을 때 미국의 국외 피신 제안을 거절하고 “(피란) 차량이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그를 히틀러에게 대항해 싸우며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에 비견된다고까지 평가했다.
그러나 전시 고질적 부패 관행을 국가 반역죄로 다스리며 싸움을 벌여왔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세에 몰린 와중 군 총사령관과의 불화설을 노출하며 전열 약화를 자초했다.
그는 지속해서 갈등설이 불거졌던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이달 들어 끝내 경질하는 등 전시에 군 수뇌부 인사를 단행하는 초강수를 뒀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은 지난해 가을 여론조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등 젤렌스키 대통령의 잠재적 정치 라이벌로 꼽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는 당초 오는 5월까지였지만, 우크라이나에 계엄령이 발동돼 오는 3월로 예정됐던 대선을 포함한 선거가 모두 유예된 상태다.
다만 임기가 전시라는 특수 상황을 명분으로 연장되더라도, 실질적인 정치적 행동력은 우크라이나 전쟁 향배와 직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