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들이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등 관련 대치를 풀기 위해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 의대 교수들이 25일로 예고한 집단 사직을 강행했다.
정부가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해 26일부터 본격화하기로 한 면허정지 처분을 유예하겠다며 전날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의사 교수들이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이미 100명 가까운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도 있으며 일부 의대는 총회를 열고 '일괄 사직'에 가까운 형태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대 교수들은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간담회 결과에 대해서도 “알맹이가 없고 공허하다"고 일축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날 정부와 의사들이 의대 증원 및 의료 공백 사태를 놓고 대화할 가능성이 생긴 것과 관련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날 한양대에서 열린 현장 선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공의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그분들(의대 교수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고, 정부에서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 위원장은 전날 전의교협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거쳐 현장 이탈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해달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청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유연한 처리 방안"을 주문했다.
한 위원장은 '의정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라며 “파국을 막기 위한 중재를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고, 그런 중재가 필요하다는 간절한 호소를 제가 들은 것이기 때문에 지켜봐 달라. 어떻게 한 번에 모든 게 다 끝나겠나"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료계)도 그동안 입장이 있을 것 아닌가. 한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단체가 있다"며 “의사 선생님들께 시간이 좀 필요한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의정 갈등의 시발점이 된 의대 증원과 관련, 규모 조절 필요성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정부가 해온 방향성(정원 확대)에 대해선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계실 것"이라면서도 “어떤 방향성을 제가 제시하는 건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이날 소속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비대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의대 교수들도 조만간 사직서 제출에 동참할 예정이거나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교수들의 뜻을 모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경우 이 병원에서 근무 중인 순천향대 의대 교수 233명 중 93명이 이미 교수협의회에 사직서를 낸 상태로 전해졌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날 오후 병원 인사팀에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져 사직서 제출 숫자는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의 전임·임상교수들은 이날 아침 안암병원 메디힐홀·구로병원 새롬교육관·안산병원 로제타홀에서 각각 모여 온라인 총회를 연 뒤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총회에는 다수의 고대 의대 학생들도 참관했으며, 이들은 정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울산대 의대 교수 767명 중 433명도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울산의대에는 수련병원 3곳에 총 767명의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528명, 울산대병원 151명, 강릉아산병원 88명 등이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 의대학장에 사직서를 일괄 제출했다. 연세대 원주의대에서도 교수 정원이 10명인 필수의료과목에서 8명이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톨릭대의대 교수들은 26일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일정 등을 논의하며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이와 관련해 저녁에 회의를 개최한다.
이날 전의교협도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및 배정' 철회 없이는 현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이를 먼저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증원 철회와 재검토를 요구하면서도 백지화가 곧 '0명'은 아니라며 여지를 내비쳤다.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전공의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거두고 명예를 회복할 것 △정부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가 함께 협의체를 마련할 것 △의대 정원을 비롯한 의료정책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수립할 것을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의사들이 '2000명 증원' 철회를 촉구하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2000명 증원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빠른 시간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하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며 '의대 증원'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