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제조업 투자가 서부에서 동부로 집중됨에 따라 미국 동부에 항만터미널 등 물류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미국 공급망 재편에 따른 수출입물류 변화와 정책과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미국 투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약 1.8배 늘어났다. 2019년 158억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277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특히 대규모 설비투자와 완제품 및 기자재 물류를 동반하는 한국 제조업의 미국 투자는 10년 전에 비해 동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대규모 반도체분야 투자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차, LG, SK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미국 동남부 'Auto Alley'라고 불리는 지역에 공장설립을 집중하고 있다.
보고서는 과거 30년간 지속돼온 아시아-미국 구간의 서부항만을 통한 물류패턴이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서부항만 정체가 심화되고 제조시설 등이 미국 동부, 캐나다, 멕시코 등 주변국으로 재편·분산되면서다.
로스앤젤레스·롱비치, 씨애틀·타코마 등 미국 주요 서부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컨테이너 물동량의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2.1%∼1.8%로 집계됐다. 뉴욕·뉴저지, 사바나, 휴스턴 등 주요 동남부항만 증가율(3.4%∼7.6%)과 비교해서 크게 낮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미물류공급망센터(뉴저지 소재) 센터장은 “미국 서부항만은 여전히 아시아·중남미발 수출물량을 처리하는 주요 관문이지만, 한국발 미국 수출물류의 흐름이 기존 태평양을 거쳐 주로 미국 서부를 통해 트럭이나 철도로 움직이던 것에서 미국 동부를 통한 해상운송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미국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터미널, 창고, 철도, 도로 등 인프라 이용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공급망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제로 북미지역 전략거점에 컨테이너 터미널, 물류센터, 물류창고 등 기반시설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선사들은 자국 선박을 자사 보유 항만터미널로 우선 접안시켜 화물을 처리하고 타국 선박들은 후순위로 미룬다. 이 때문에 터미널을 보유하지 못하는 선사는 화물처리가 늦어지게 돼 수출기업들은 위약금, 계약취소 등의 피해를 입게 된다.
한국은 과거 미서부 주요항만인 롱비치에 항만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7년 매각 이후 현재 보유하는 항만터미널은 시애틀·타코마 일부지역에 불과하고 동부지역엔 전무한 상황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현지에 물류기반시설이 있으면 안전재고를 확보해 리스크 발생 시 대응이 가능하지만, 시설이 부족한 경우에는 부품공급 중단으로 공장이 멈출 수밖에 없다"며 “타국의 물류기반 시설 이용으로 인한 상품의 가격경쟁력 저하, 비용증가, 배송문제 등 기업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물류공급망 안정화 관련 법제도 구축 △물류공급망 관련 해외진출사업 금융지원제도 개정 △화주·물류기업 상생 협의체 운영 등을 제안했다.
장근무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최근 이스라엘-이란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해운 피격, 볼티모어항 다리붕괴 사고 등 공급망 이슈가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데다, 향후 미국 대선결과에 따라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 등에서 추가적인 물류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급망 리스크가 상시화될 경우 수입물가 상승, 수출장애 등 다방면에서 한국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선제적으로 나서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