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T와 쌍용건설 사이의 판교사옥에 관한 공사비 갈등이 발생했다. 쌍용건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자재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였으므로 공사비 상승분 171억원을 지급하라는 입장이고, KT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공사비 상승분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에서 진행되는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공사도급계약서나, 국가와 계약을 체결하여 진행하는 관급공사의 공사도급계약서를 유심히 보면, 소위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있는 경우가 있다.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일정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후에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조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다.
정비사업조합의 경우 공사비가 증액하게 되면, 그만큼 조합원들이 부담하여야 되는 분담금이 증가하게 되므로, 조합원들은 공사비 증액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분담금이 지나치게 증액되는 경우 조합원들은 정비사업을 진행하더라도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 현금청산자가 되거나, 정비사업 완료 후 분담금을 납부하지 못하여 강제경매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현행법상 유효할까?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에 현대로템과 한국철도공사 사이의 전기기관차 공급계약에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을 배제하는 조항을 둔 것에 대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법률 제19조는 강행규정이고,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의 동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물가상승분이 3년간 약 6.8%에 불과하고, 현대로템으로서는 물가상승분을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을 것인 점,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제도는 물가가 하락한 경우 감액될 수 있는 위험도 있고,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의해 감액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공공계약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계약금액 조정을 금지하는 특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국토교통부 역시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하면서, 대법원의 판단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내세웠다. 앞서 제시한 대법원의 판단은 관급공사에 관한 것이어서 정비사업 등 민간공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만은 없다. 민간공사에는 건설산업기본법이 적용되고,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의하면 계약체결 이후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에,그 조항은 무효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대금의 조정 자체를 금지하는 특약은 시공사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인다. 반면, 시공사가 스스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동의한 후 그에 반하여 공사비 증액을 주장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조합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일정한 기준일 이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이 없다는 규정을 원칙으로 정하되, 일반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물가 상승(가령 계약 전 5년간 물가 상승 평균 수치를 초과)이 있는 경우는 증액을 허용하고, 증액의 한도는 예측이 가능한 범위를 초과한 금액(가령 현재 물가 상승분에서 5년간 물가 상승 평균 수치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으로 하는 규정을 두는 것이 적절하여 보인다.
그리고 기존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무효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특약 자체를 전면적으로 무효로 하기보다는 통상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정도로 물가가 상승한 경우에까지 공사비의 증액을 배제하는 조항은 무효로 판단하되, 무효의 범위를 한정하여 공사비 증액의 한도를 예측이 가능한 물가 상승 범위를 초과한 금액으로 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