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윤석열 정부 인사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에서 야당의원들로부터 칭찬을 이끌어내며 여야 협치의 물꼬를 트는 모양새다. 거대 야당의 국회 단독 입법처리와 그에 맞서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무한반복되는 고리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8일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들이 줄곧 야당과 극렬한 대립관계를 유지한 것과 달리 유인촌 장관은 야당과 원만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 장관을 향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이례적인 칭찬 발언이 나왔다. 유 장관이 최근 역사 현안과 관련해 다소 결이 다른 답변들을 내면서다.
유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문화부 입장에선 충분히 한·일 관계 문제는 꼭 짚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9월 한·중·일 문화장관 회담에서) 저는 그쪽 일본 장관하고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서 의논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입니까? 1948년입니까?"라고 묻자 유 장관은 “항상 우리 헌법에도 우리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는 게 다 나와 있지 않습니까?"라며 1919년임을 인정했다.
민 의원이 재차 “아니 그런데 자꾸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묻자 유 장관은 “인정하는 거죠. 인정하고…"라고 답변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례적으로 칭찬이 나왔다. 이기헌 의원이 “감회가 새롭다"고 하자 유 장관도 “감사하다"고 답했다.
야당의 대표적인 강성인 양문석 민주당 의원도 “워낙 반헌법적 장관들이나 차관들을 많이 봐서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장관을 만나니까 참 반갑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장관이 야당 국회의원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은 아주 이례적이고 처음 있는 일"이라며 “여야가 내내 야당의 특검 등 법안 강행 처리와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반복으로 대결구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장관과 야당 국회의원 사이가 이렇게 보기 좋다는 것은 국민들이 정치권에 안심을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는 사이 22대 국회가 출범한지 2개월이 지났음에도 본회의를 통과한 경제·민생 법안은 한 건도 없다. 법안 심사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은 상임위원회가 전체 16개 중 8개일 정도이다.
대통령실과 여당, 야당 간의 입장이 극적으로 좁혀지지 않는 이상 이 같은 대치구도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각 정당이 소모적 정쟁에 몰두하느라 국회의 가장 본질적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양쪽이 입장을 좁히거나 타협하려는 시도를 해야하는데 어느 쪽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여야 모두 국민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우려했ㄷ. 이어 “이런 상황에서 유 장관이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좋게 표현하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며 “행정부와 입법부의 의정활동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