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가계부채 관련 오락가락 발언으로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여야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비판은 제가 감내해야겠지만 가계대출 추세를 꺾지 않았다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불편을 겪은 부분에 대해서는 송구하나, 당국의 구두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시장의 어려움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취지다.
“DSR 규제 연기로 인한 어려움, 저에게 책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이 가계부채를 놓고 시장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이현승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보시기 불편한 부분이나 은행, 소비자들이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사과 말씀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연기를 포함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경제팀 내 충분한 협의 하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정상화, 태영건설 워크아웃 관련 구조조정이 심각했다"며 “가계부채 관리가 중요한 정책 목표인 건 맞지만, 다양한 거시경제 운영을 같이 해야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우리(금융당국)가 상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DSR 규제 연기는 부동산 PF 시장 안정화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는 취지다.
이 원장은 “DSR 규제 연기로 가계부채 관련 어려움이 생긴 부분은 제가 사과 말씀을 드리고, 저에게 책임이 있다"며 “그러나 이 결정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감독원이 보좌해 당국에서 결정한 사안으로,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내수부진,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원장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내수나 취약계층의 어려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금감원은)가계부채 문제로 한국은행이 좀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우리가 최근 분석한 결과 기준금리 25bp 인하가 아주 짧게는 한 두 달 이후부터 다수의 차주들에게 수천억~수조원 이상의 이자부담 경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있다면 더욱 큰 소비진작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당국, 가계대출 규제 없었다면 한은 금리인하 어려웠을 것"
나아가 이 원장은 8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없었다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7~8월께) 대출금리를 올린 것은 대출의 규모를 줄이는 목적보다 이익이 늘어나는 추세에 편승한 부분이 있다"며 “이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관리하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개입이 잘 했다는 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만일 금융당국이 적절한 방식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대출 증가세가 꺽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은 (상황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았다면 한국은행 금리 인하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비판은 제가 감내하겠지만 가계대출 증가 추세를 꺾지 않고 냅두는 게 맞다는 오해에 대해서는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국감에서는 우리금융지주의 보험사 인수합병(M&A) 인수 결정과 관련해 금감원과 소통하지 않았다는 이 원장의 과거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이 원장은 지난달 초 우리금융지주가 동양생명, ABL생명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생보사 인수는 영업 확장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보험사는 은행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금융지주 차원에서 리스크가 반영됐는지, 안됐는지 걱정이 있다"며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 결정은) 민간 계약이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리스크가 어떤 게 있는지 당국과 소통해야 하는데 우리금융은 금융위, 금감원 등 어느 곳과도 소통하지 않았다"고 밝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날 국감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에서 정하고, 대출금리는 이 원장이 정한다는 비판이 있다"며 “금융 최고 의사결정 기관은 금융위원회이고,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에서 위임하는 검사 등을 담당하는데, 이 원장은 금융정책에 대한 발언이 잦다"고 비판했다. 권 의원은 “(이 원장은) 우리금융의 보험사 M&A 관련해서도 (우리금융이) 금감원과 보험사 인수를 소통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우리금융이) 금감원과 사전에 소통을 왜 하나"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금감원은 검사 결과로도 이야기하지만, 주요 은행, 주요 금융기관의 자산운용 정책을 두고 금감원이 어떤 부분을 보겠다고 하는 건 간담회나, 메시지를 통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금융 건을 두고) 금감원이 다 잘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사후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금융당국의 역할,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