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 업계가 인공지능(AI) 인재를 영입하면서 조직개편도 병행하는 모습이다. 주력 사업의 무게중심을 AI로 옮기며 체질 개선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조정에도 속도가 붙으며 고용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통신·게임업계를 중심으로 AI 인재 확보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AI 연계 서비스가 속속 나오고 있는 데다 내부적으로도 기술이 적용되는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서다.
LG유플러스는 최근 △컨슈머부문 AX(AI전환)마케팅 △최고기술책임자(CTO)부문 네이티브 앱 개발 △CTO 부문 데이터 거버넌스 등 AI 직군 채용을 진행했다. 올해 1000명 규모의 AI 인재 채용 계획을 밝힌 KT는 △AICT(AI+ICT) 프로젝트 전략가 △AI 분야 B2B 전문가 △클라우드 분야 B2B 전문가 △IT분야 B2B 전문가 등을 상시 채용하고 있다. 내년엔 AI·클라우드 분야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AX 전문기업도 출범할 예정이다.
게임업계 역시 AI 개발 조직이 꾸려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전문인력 채용이 활발하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텍스트투스피치(TTS)와 자연어처리(NLP) 분야를 중심으로 AI 직무 인력을, 크래프톤은 NLP·챗봇 등 AI 엔지니어와 연구개발(R&D) 분야 경력직을 채용 중이다. 이들은 중장기 성장 전략으로 AI 기술을 활용한 제작 혁신 등을 제시한 바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AI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됨에 따라 채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급여 등 채용 조건을 올리고, 내부적으로도 AI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작 신규 채용 규모는 줄어들며 경력직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사람인에 따르면 올 2분기 IT업계 채용 공고 중 신입 모집 공고는 4%로 집계됐다. 반면 경력직 모집은 지난해 2분기 47%에서 1년 새 5%포인트(p) 상승했다. 전체 규모에서 AI 관련 경력직 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며 신입 개발자 등이 설 자리가 줄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과가 미미했던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도 한창이다. 변화폭이 가장 큰 곳은 KT와 엔씨다. KT는 선로·전원 등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유지 업무를 전담할 자회사 2곳을 설립하고, 관련 인력 약 5700명을 전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특별희망퇴직을 시행한다.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인력 운용의 효율화가 필요한 일부 직무를 재배치한다는 설명이다.
엔씨는 4개의 신설 법인 설립과 함께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엔씨QA·IDS를 분사한 데 이어 엔씨AI·스튜디오엑스·스튜디오와이·스튜디오지(가칭) 등 4개 자회사를 신설키로 했다. 일부 개발 프로젝트와 지원 기능을 종료·축소한 후, 인력 재배치와 희망퇴직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엔씨가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건 2012년 이후 약 12년 만이다.
군살빼기를 진행 중인 카카오 역시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카카오VX의 경우 스크린 골프 장비 골프장 예약 플랫폼 등을 제외한 비핵심 사업을 철수할 예정이다. 최근 관련 부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으며, 불응 시 자택 대기발령과 급여의 70%만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부서 소속 인원은 약 100명이다.
이외에도 SK텔레콤은 퇴직 프로그램 '넥스트 커리어'의 위로금 지급 규모를 대폭 늘리며 희망퇴직을 유도하는 모양새다. 이 회사는 지난 2019년 제도를 도입한 지 약 5년 만에 위로금을 기존 5000만원에서 최대 3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희망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2년간 유급 휴직을 진행하고 복직 또는 퇴직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AI 기술 도입이 빨라지면서 시장 환경 및 인력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경영 전반의 변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것. 다만 지난해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지며 고용불안이 확산됨에 따라 노사갈등도 증폭되는 상황이다. 노사 간 소통을 강화해 직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취지를 전달하고, 선택지를 다양화하는 등 해법 도출이 중요하단 게 업계 중론이다.
IT업계 관계자는 “기술 혁신 및 사업 재편에 따른 인력 조정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기존 사업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는 있다"며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며 핵심 인재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고용안정 확보를 위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