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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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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야, 영점 맞추기 어렵네”…좌충우돌 이스타항공 FTD 체험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10.27 12:45

보잉 737-8 기종 조종실 환경 구현…다양한 상황 반복 훈련 가능

공건영 교관 “좋은 조종사? 상황 불문 승객 안전 최우선으로 여겨”

“조종사 개인 운항 철학, 존재 할 수 없어…휴먼 에러 방지 조치”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보잉 737-8 기종 모의 비행 훈련 장치(FTD). 사진=박규빈 기자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보잉 737-8 기종 모의 비행 훈련 장치(FTD). 사진=박규빈 기자

“십자가를 조그만 사각형 안에 맞추세요. 어떻게? 이렇게 당기고, 왼쪽으로, 자, 십자가 쪽으로 가줘야죠? 너무 많이 당겼어요. 적당히 맞춰줘야 해요."


공건영 이스타항공 운항훈련팀 교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양손에 쥔 조종간(요크)을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 속 비행기가 크게 요동친다. 아무리 정중앙의 영점을 맞추려 애를 써도 좀처럼 쉽지 않다. 실제 상황이라고 상상하니 이미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고 있었을 것 같아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왔다.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 발산동 소재 이스타항공 본사 운항 훈련 센터에 방문해 보잉 737-8 기종의 고정식 훈련 장치(FTD, Fixed Training Device)를 경험했다. 플라이트데크 솔루션이 제작한 이 FTD는 시뮬레이터 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높은 수준으로 실제 항공기와 흡사한 조종실(칵핏) 환경을 구현해 조종사들의 절차 훈련에 사용되는 고가의 장비다.


공 교관은 FTD가 비행기 조종 감각을 익히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비행에 앞서 위험 부담 없이 다양한 상황을 반복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잉 737-8 기종 모의 비행 훈련 장치(FTD) 조종실 내부. 사진=박규빈 기자

▲보잉 737-8 기종 모의 비행 훈련 장치(FTD) 조종실 내부. 사진=박규빈 기자

그날의 FTD 체험은 저시정 상태에서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를 출발해 제주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시나리오로 시작됐다. 기장석에 앉자 눈앞에 펼쳐진 현란한 계기판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백개의 스위치들에 압도됐다.




그러나 타 항공사에서는 점보기까지 운항해 베테랑 그 자체인 공 교관이 좌표와 행선지, 도착 공항의 활주로 등 제반 계획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에는 불과 1분 남짓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잉 737-8 FTD를 체험 중인 박규빈 기자=이스타항공 제공

▲보잉 737-8 FTD를 체험 중인 박규빈 기자=이스타항공 제공

이후 공 교관의 안내에 따라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정대했고, 기장석 왼쪽의 스티어링 핸들로 조종을 시도했더니 '갈 지(之)'자 모양으로 움직여 순간 술 마신 사람이 운전하는 건가 싶어 당황했다. 현대 과학 기술의 총아인 항공기가 그 크기에 비해 섬세함을 요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륙 결심 속도(V1)에 이르러 묵직한 조종간을 몸쪽으로 당기자 비행기가 서서히 떠올랐다. 하지만 고도 유지는 매우 어려웠다. 순항 고도에 이르렀나 싶어 방심한 새에 비행기가 급하강하거나 상승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


정상 운항 중인 모습(좌)과 기체가 왼쪽으로 쏠린 상황. 사진=박규빈 기자

▲정상 운항 중인 모습(좌)과 기체가 왼쪽으로 쏠린 상황. 사진=박규빈 기자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유행어 '이븐한 굽기'처럼 조종사에게 '이븐한 운항'이란 무엇일까.


공 교관은 “비행기 조종은 끊임없는 미세 조정의 연속"이라며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전체 비행 시간 중 30% 정도에서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데, 특히 이륙 후 3분과 착륙 전 8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화재에 따른 엔진 고장 상황을 부여하자 'FIRE WARN'이라는 빨간 스위치가 켜졌다. 사진=박규빈 기자

▲화재에 따른 엔진 고장 상황을 부여하자 'FIRE WARN'이라는 빨간 스위치가 켜졌다. 사진=박규빈 기자

FTD에서는 버드 스트라이크와 같은 다양한 비상 상황을 상정한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었다. 공 교관이 갑자기 엔진 고장 상황을 설정하자 경고음과 함께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종사들은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대처해야 한다.


공 교관은 “실제 비행에서는 이런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철저히 훈련한다"고 했다. 그는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3년 이상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며 “이스타항공을 위시한 저비용 항공사(LCC) 입사를 위해서는 통상 300시간, 대형 항공사의 경우 1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공건영 이스타항공 운항훈련팀 교관은 '좋은 조종사가 무엇이냐'는 본지 질문에 “운항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

▲공건영 이스타항공 운항훈련팀 교관은 '좋은 조종사가 무엇이냐'는 본지 질문에 “운항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진=박규빈 기자

기자가 공 교관에게 “좋은 조종사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행동하는 게 좋은 조종사이고 진정한 프로"라며 “멀티 태스킹과 같은 기술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에 대한 확고한 마인드"라고 했다.


조종사 각 개인의 운항 철학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도 질문했다. 그러자 공 교관은 “절대 있으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항공사는 안전 비행을 할 수 있도록 규격 또는 정형화된 좋은 조종사로 만들기 위해 매뉴얼을 마련해둔다"며 “휴먼 에러를 최소화 하기 위해 운항 기준 표준화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을 쏟고, 교육 용어 자체가 다 통일돼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비행 전 충분한 휴식과 철저한 준비는 기본"이라며 “조종사의 컨디션이 곧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술을 마시거나 과로한 상태로 비행에 임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첨언했다.


이스타항공 보잉 737-800 여객기 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이스타항공 보잉 737-800 여객기 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2시간 남짓한 좌충우돌 FTD 체험이 끝나갈 무렵, 항공기 조종사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에 대해 곱씹게 됐다. 수백 명의 승객 생명을 책임지는 그들의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었고 경외심마저 들었다. 과연 조종사는 전문직이 맞다는 말이 절로 나왔고, 각각 전문성·지식·기술·책임을 의미하는 기장의 견장 네 줄의 의미가 또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사세 확장을 거듭해나가는 이스타항공이 단순 외형 성장 뿐만이 아닌 질적 수준 제고에도 얼마나 신경쓰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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