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의 올 3분기 농사는 '흉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수출 판매 물량이 늘어났으나, 판가가 급락한 탓이다. 이후로도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이 점쳐진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9월 석유제품 내수 소비량은 2억3634만5000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1.4% 많아졌다. 수출량도 1억2803만5000배럴 13.8% 증가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영업손실은 42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조원 가까이 하락하면서 적자전환했다. 에쓰오일도 8589억원에서 -4149억원, HD현대오일뱅크 역시 3191억원에서 -2681억원으로 나빠졌다. GS칼텍스 또한 이같은 흐름과 유사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 및 중국 수요 부진 등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3분기 국제유가는 배럴당 평균 78.3달러로 8.4달러 낮아졌다.
정제마진이 축소된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는 휘발유와 경유를 비롯한 제품값에서 원유값·수송비·운영비 등을 제외한 값으로, 국내 기업들의 손익분기점(BEP)은 5달러 수준이다.
대한석유협회는 수출채산성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제품수출단가에서 원유도입단가를 뺀 것으로, 지난해 3분기 19.4달러에서 1년 만에 5.5달러로 72% 가까이 급락했다. 이에 따라 3분기 수출액도 113억9300만달러로 4.0% 하락했다.
휘발유의 경우 성수기 종료에 따른 계절적 수요 감소와 신규 정유공장 가동이 겹치면서 시황이 악화됐다. 경유는 중국과 유럽 내 산업용 수요 약세 및 미국·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재고량이 많았던 것이 판가에 악영향을 끼쳤다.
파라자일렌(PX)과 벤젠을 포함한 주요 석유화학 제품의 스프레드도 감소했다. 드라이빙 시즌 종료로 아로마틱 원료의 휘발유 블렌딩 수요가 줄어들고 정기보수를 마친 아시아 지역 생산설비들이 물량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납사값이 낮아진 것도 재고평가이익 축소로 이어졌다.
4분기 전망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미국 기준금리 하락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완화 △유럽·중동을 비롯한 지역 내 정제설비들의 가을철 정기보수로 인한 공급 감소 효과 △겨울철 항공유와 난방유 수요 증가 등으로 시황이 회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감산 완화로 공급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석유 수요 둔화 우려 등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기 힘들고 재정적 어려움이 길어진 산유국들이 가격방어에서 시장점유율 확보로 노선을 바꾼다는 이유다.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와 미주 지역 생산량이 불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비관론'에 힘을 싣고 있다. 유로존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중국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언급된다.
석유화학은 계절적 수요 둔화와 신규 다운스트림 설비 가동에 따른 신규 수요 및 역내 폴리프로필렌(PP)·폴리올레핀(PO) 설비 증설 등이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활유·윤활기유 사업은 원재료값 하락을 비롯한 요인에 힘입어 수익을 냈고, 4분기에도 몬순 시즌이 종료되면서 촉진된 수요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설비들이 정기보수에 돌입하는 것도 공급량 감소로 이어질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석유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나, 전기차 전환·탄소중립 등 장기적인 리스크를 안고 가는 상황"이라며 “지속가능연료(SAF) 생산설비 구축을 비롯한 투자 부담도 향후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