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옹호론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가운데, 현 바이든 정부의 청정경제 핵심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폐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오히려 미국 산업보호를 위해 유럽연합(EU)보다 더 강력한 탄소국경세 제도를 신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자원경제학회와 국회미래연구원 주최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환경 및 에너지 정책 방향과 탄소국경세 도입 동향' 발표에서 “트럼프 2기는 현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입법인 IRA의 전면 폐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이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이지만 민주당과 의석수가 6석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IRA 수혜 지역이 주로 공화당 강세주라는 점에서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법안 폐기 시도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 연구위원은 이어 “공화당 의원 18명이 마이클 존슨 하원의장에게 IRA의 재생에너지 세액공제를 철회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들의 지역구에 있는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투자도 많이 하고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 2기가 IRA 일부 세액공제 요건은 수정할 수 있어 이럴 시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의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세미나에 참석한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며칠 전 다녀 온 아제르바이잔 COP29에서 미국 공화당 의원을 만났는데, 그분이 '한국은 너무 IRA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오히려 트럼프 2기에서 탄소무역장벽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현재 미국 118대 의회에는 탄소국경세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5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 가운데에는 민주당 것도 있고, 공화당 것도 있다.
이에 대해 강 연구위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법안이 큰 틀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양당 간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친환경 전환, 공화당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장벽 건설을 이유로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2기의 무역대표부(USTR) 또는 재무장관으로 거론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도 탄소국경세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일본의 GX 추진과 국내 시사점' 발표에서 “일본은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 강화, 경제성장을 동시 실현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50조엔을 투자하는 녹색전환(GX)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재원 마련을 위해 이행채 발행 및 2033년부터 발전부문 배출권 유상할당 실시, 2028년부터 GX부과금을 도입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GX부과금은 화석연료에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세이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탄소중립 산업정책 현주소와 개선방향' 발표에서 “7인 전문가 조사(FGI) 결과 첨단산업, 주력산업, 공급망, 통상 등의 정책수립 체계에서 탄소중립 달성과 산업경쟁력 제고에 대한 적절성 및 효과성이 낮음이 확인됐다"며 △법적 근거에 기반한 종합적인 탄소중립 산업전략 수립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재원 확보 방안 마련 및 재원 배분 체계 개선 △산업 탄소중립 대전환과 경쟁력 재고를 위한 입법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강승진 한국공학대 명예교수의 좌장 아래 이동규 서울시립대 교수,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 장현숙 무역협회 팀장, 김효수 반도체산업협회 실장, 이상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환경과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글로벌 에너지 및 산업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미국의 단기적 정책 변화에 대해 대응하고,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기후 리더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혜 의원은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산업부문의 혁신과 대전환이 필수적"이라며 “친환경 전환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로 작용하도록 정부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