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화재가 10년 만에 기업 인수에 나서면서 MG손해보험의 유력한 최종 인수자로 섰다. 다만 시장 내 '애물단지'처럼 여겨지던 MG손보의 부실을 보완해 계열사간 시너지를 일으켜야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예금보험공사와의 협상 이후 딜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메리츠, M&A 10년 만…완수 시 업계 2위로 '껑충'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예보)는 지난 9일 MG손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우협)에 메리츠화재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MG손보는 앞서 네 차례의 매각 과정을 거쳤으나 실패한 뒤 5차 입찰부터 수의계약으로 전환해 매각을 추진 중이다.
예보에 따르면 MG손보 매각과 관련해 지난 10월 2일 메리츠화재와 사모펀드 데일리파트너스로부터 인수제안서가 접수됐다. 예보는 자금지원요청액, 계약 이행능력 등에 대해 심사한 결과 메리츠화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했다. 데일리파트너스는 자금조달계획 미비 등의 사유로 차순위 예비 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메리츠화재는 국내 금융지주사와 은행, 보험사, 대형PEF 등 여러 기관의 인수 의향과 국회에서 제기된 특혜 의혹을 뚫고 최종 인수 후보자로 낙찰됐다. 이번 인수 타진은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의 M&A 기준에도 부합한다. 앞서 김 부회장은 인수 기업에 대해 인수가격과 주주가치를 강조하며 “가격이 적절한지, 그 사업을 이끌 인재가 확보됐는지, 리스크 규모와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M&A할 때 살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메리츠화재는 자산부채이전(P&A) 방식을 택할 수 있단 점에서 이번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P&A 방식은 대상 기업의 자산과 부채 중 일부만 선별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방식이다.
메리츠금융으로선 2014년 아이엠투자증권 인수 후 현재까지 인수합병(M&A)이 전무했던 이력 상 이번 시도가 매우 도전적인 선택일 수 있다. 종전까지 기존 보유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을 최선책으로 꼽아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회사를 품어 시너지를 내는 방식을 열어야하기 때문이다.
우선 메리츠화재가 MG손보 인수를 완수하면 업계 2위인 DB손해보험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덩치가 커진다. 현재 메리츠화재는 자산 순위로 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에 이어 네 번째다. 자산은 9월 말 기준 현대해상과 약 3조원 차이로 MG손보(4조2450억원)와 합병 시 현대해상(46조1826억원)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
메리츠화재의 계약서비스마진(CSM)은 지난해 말 기준 10조4687억원으로 MG손해보험(6774억원)과 더하면 11조1461억원이 된다. DB손보(12조1524억원)와는 1조원의 격차만을 남겨두게 된다. CSM은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서 보험사의 주요 경영지표다.
생각보다 부실 클 경우 '변수'…예보 지원액 규모가 관건
문제는 MG손보가 네 차례나 매각에 고배를 마실 만큼 예비 인수자들이 포기를 거듭한 부실 매물이란 점이다. 자본력과 이익 창출력으로 정평 난 메리츠라도 MG손보 경영정상화까지 갈 길이 멀기에 득만큼 실 역시 클수 있단 예측이 나온다. MG손해보험의 지급여력비율(킥스)는 상반기 말 기준 44.4%로 금융당국 권고치 150%를 크게 하회한다.
특히 메리츠금융의 성장과 시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MG손보 건전성 회복을 두고 김 부회장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분석이다. 매각가 2000억~3000억원 수준으로 인수상 가격은 타 매물 대비 높지 않지만 회사 정상화를 위해선 1조원가량의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메리츠화재의 지급여력비율(킥스)이 226.9%로 200%를 상회할만큼 건실하나 메리츠 측의 추가 투입 자본 규모가 상당할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이에 향후 매각 성사 여부가 예보의 추가자금 지원을 둔 양 측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예보로부터 5000억원의 자금지원을 받아도 추가 투입금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반 M&A와 달리 이번 인수방식엔 고용승계 의무가 없기에 메리츠화재와의 화학적 결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MG손보 노조는 전 직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극심한 반발에 나선 상태다. 노조는 또한 메리츠화재의 실사도 막아서겠단 입장이다. MG손보 노조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과정과 결과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를 통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업계도 노조의 반발이 인수 과정상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의 PCA생명 당시와 KB생명과 푸르덴셜생명 통합 시에도 희망퇴직 작업이 선행된 바 있다.
메리츠화재가 각종 리스크를 검토한 결과 예상보다 더 부실이 크다면 협상을 무산하고 딜을 파기하는 선택지도 남아있다. 예보 역시 메리츠화재에 배타적 협상기간을 부여하지만 협상이 결렬될 경우 새로운 회사의 참여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김 부회장도 지난달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 콜에서 인수 완주에 있어 “주주 이익에 부합할 경우 완주하고 그렇지 않으면 중단할 것"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란 의사를 표한 바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산은 협상 이후 양측의 협의에 의해 나눠 가져가기에 협상 과정이 관건이다"며 “예보의 자금 지원 규모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사 후 실제 부실규모를 보고 인수자가 어느 비율로 자산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예보 지원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정확히 정해진 게 아니다. 매각 가격이나 지원액도 원칙상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