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2024년 용띠해(갑진년) 마지막날인 28일 오후 2시58분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열차의 객실 차장 밖으로 온통 설경(雪景)이 펼쳐졌다.
서울역을 벗어나 20분쯤 지나자 하얀 눈으로 뒤덮인 거리, 논밭, 산, 집들이 객실창 뒤로 휙휙 내달렸고, 바깥에선 눈싸라기들이 바람에 떠밀려 차창으로 돌진해 왔다.
휘몰아치던 눈발은 천안아산역에 가까워지자 잦아들더니 열차가 역에 정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천안아산역 이후로 차창 안으로 들어온 풍경은 마치 정갈한 한 폭의 수묵화였다. 보이는 건 흑(黑)과 백(白)으로 아름답게 칠해진 담백한 겨울 서화였다. 흑이 나무와 산의 차지라면, 백은 죄다 눈의 세상이었다.
바깥 설풍경에 빠져있는 사이 KTX 열차는 안전운행을 위해 시속 170㎞ 속도로 '조심조심' 달리는 탓에 부산에 예정 도착시각보다 30분 이상 연착할 예정이다. 설경의 즐거운 눈요깃거리를 제공한 대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향길이 다소 늦더라도 안전이 제일이다.
2025년 뱀띠해(을사년)에는 세월호, 이태원, 무안공항 등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한 해'가 되기를, 애궂은 죽음을 폄훼하는 몰염치와 몰상식의 가치가 발을 못 붙이는 '온전한 한 해'로 자리매김하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