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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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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두고 트럼프 안에서 싸우는 "천사 vs 악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6.12.19 07:41

친기업·친화석연료 인사들로 채워지는 트럼프 내각…딸 이방카만이 기후변화의 유일한 희망

▲도널드 트럼프 차기 정부 내에서 기후변화를 두고 싸움이 벌어질 태세다. 트럼프 당선인의 장녀이자 ‘막후실세’인 이방카 트럼프가 환경운동가를 만나는 한편, 에너지 부처 수장으로는 줄줄이 친화석연료 인사들이 낙점됐기 때문이다. (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차기 정부 내에서 기후변화를 두고 싸움이 벌어질 태세다. 트럼프 당선인의 장녀이자 ‘막후실세’인 이방카 트럼프가 환경운동가를 만나는 한편, 에너지 부처 수장으로는 줄줄이 친화석연료 인사들이 낙점됐기 때문이다. 일단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득세하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엇갈리는 트럼프의 입장을 천사와 악마로 비유해 보도했다.


◇ 천사 : 이방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장녀이자 ‘막후실세’인 이방카 트럼프(35)가 새 정부 출범 후 당분간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방카는 전통적으로 백악관 안주인의 공간으로 알려진 퍼스트레이디 집무실을 사용할 예정이다.(사진=AFP/연합)


트럼프의 딸 이방카는 대선 운동 기간 활발한 유세와 정책 수립으로 아버지의 약점을 상쇄한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다. 트럼프 차기 정부가 탄소배출을 감축해 온 오바마의 모든 노력을 뒤집고 화석연료를 최대한 개발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방카만이 유일한 방패막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그녀가 기후변화를 중대한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엘 고어 전 부통령과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난 점이 그녀의 성향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달 초 폴리티코는 "이방카가 지구 온난화 방지 차르(총책)로 활약할 수 있다"며 아버지를 보좌할 대통령 특보 선임 가능성을 전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15일 트럼프가 자신의 사업을 두 아들에게 넘기고 이방카를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에 둘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이방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힘 센 장녀가 될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정치적 자문위원으로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녀는 정치와 사업간 이해상충 소지를 없애기 위해 최근 트럼프의 사업체가 위치한 뉴욕을 떠나 워싱턴 D.C. 로 이사했다. CNN에 따르면, 퍼스트레이디의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이스트윙(동쪽 별관)에 이방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문제는 설령 이방카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음이 진심이더라도, 트럼프 내각에 인선된 친기업 친석유 관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같은 기업인이 탄소배출량 감축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기술 혁명이 창출할 경제적 기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가디언은 조언했다. 앞서 디카프리오는 지난 8일(현지시간) 트럼프와의 회동에서도 재생에너지가 수백만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UCLA 로스쿨 교수 알렉스 왕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중국이 노리고 있는 기회"라고 전했다. 왕 교수는 "기후변화 규제는 저탄소, 첨단기술, 재생에너지 산업 중심으로 변화하는 중국의 경제적 도구"라며 "미국이 트럼프로 인해 재생에너지 혁명에서 후퇴한다면 그 과실을 얻는 것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악마: 석유공룡

▲스콧 프루이트(48)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은 EPA 청장에 지명됐다. 이번 인선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환경정책이 다소 무산될 것이란 전망이 높아졌다. (사진=오클라호마 주)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하는 쪽에서는 트럼프 내각 인선이 악몽이라는 평가다. 트럼프 당선인은 오랫동안 기후변화 반대론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자 석유 산업 로비스트인 마이런 에벨을 환경보호청(EPA)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세웠다. 앞서 에벨은 연방정부의 전기차 지원 중단을 주장하기도 했다.

EPA 청장으로는 스콧 프루이트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을 지명했다. 프루이트 내정자는 공화당 출신 변호사로 EPA가 추진했던 오바마의 청정전력계획(CPP)를 막기 위해 집단소송을 제기한 인물이다. 가디언은 그를 ‘석유 산업의 꼭두각시’라고 평가했다.

타임지 조사에 따르면, 프루이트는 지난 2014년 에너지 로비스트의 편지를 받고 오바마 환경규제 반대 운동에 앞장서왔다. 그는 EPA, 내무부, 예산관리국 등을 상대로 화력발전소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 수질오염 방지 대책 등에 대한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연방 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이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은 환경규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성향을 미뤄봤을 때, 프루이트가 공식 임무를 시작하면 민주당 상원의원들과 싸워서라도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EPA 규제를 전부 없앨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뒤집기 작업은 에너지부 인수위 수장인 토마스 파일과 발걸음을 맞춰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차기정부에서 화석연료 산업 전반을 담당하게 된다.

파일은 대형 에너지 기업인 코흐 인더스트리스를 비롯한 다수의 화석연료 기업 로비스트 출신이다. 지난주에는 그가 작성한 ‘트럼프 에너지 정책’ 관련 쪽지가 유출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쪽지에는 화석연료 기업들의 위시리스트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①파리 기후협정 탈퇴 ②연방토지 내 석유 천연가스 개발 확대·석탄 임대 유예 폐지 ③CPP 폐지 ④키스톤XL, 다코타 송유관 사업 재개 ⑤연료 경제 표준 되돌리기 ⑥탄소세 폐지 ⑦온실가스가 사람들의 건강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위험성 재고

파일은 EPA가 말하는 온실가스의 위험성은 제고돼야 하며 아예 폐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에 관한 이론이 규제를 늘렸다는 주장이다. 쪽지 속에는 오바마 정부에서 통과된 연료 효율성 표준이 완전히 폐지되고 현재의 연료 경제 수준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즉,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계획은 그간 미국에서 진행돼 온 모든 탄소배출량 감축 노력을 되돌리겠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셈이다.

이달 초 에너지부 인수위는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던 다원의 목록을 작성해 넘기라고 요구해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가디언은 "이같은 움직임이 환경규제를 모두 없애는 작업의 토대일 수 있다"며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의 잠재적 징후라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트럼프의 내각에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로 가득차 있다. 조지 몬비오 가디언 환경칼럼니스트는 에너지부와 EPA 직원들 중 화석연료 산업의 로비스트 혹은 싱크탱크 출신 인물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트럼프의 우주 정책 보좌관은 나사의 기후변화 리서치를 완전히 삭제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내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캐시 맥모리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EPA의 온실가스 규제를 포함해 96%의 환경규제 입법에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다. 그녀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개발을 늘려야 한다는 대표적 셰일산업 옹호론자다.

트럼프의 수석 전략가는 스티브 바논은 극우 인터넷 전문 매체 ‘브레이트바트’ 창업자다. 가디언은 바논이 여성혐오 담론과 결합해 기후변화는 상상에 불과하다는 최악의 기사를 출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낙점했다. (사진=AP/연합)


이 모든 인물들을 차치하더라도, 권력승계서열 3위인 국무장관에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의 CEO를 임명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가디언은 강조했다. 엑손모빌은 1970년대부터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은폐해왔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뉴욕과 매사추세츠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 트럼프는 기후변화 영웅 vs 악당…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앞서 살펴봤듯 기후변화에 있어 트럼프는 한 쪽 어깨에 천사를, 다른 쪽엔 악마를 올려둔 모습이다. 가디언은 트럼프의 경우 천사는 한 명인 반면, 악마는 여러 명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노력을 막아서는 데 앞장 서온 인물들을 내각 곳곳에 임명한 탓이다.

트럼프는 이방카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녀는 기후변화 문제에 일가견이 있는 고어 전 부통령과 디카프리오와 트럼프 간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방카는 정계에 이제 막 첫발을 디딘 만큼, 기후변화 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식 관료들의 힘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그녀의 조언은 트럼프의 악몽 같은 내각 인선을 막지 못했다.

이는 마치 농부의 딸이 달걀을 지켜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농부는 닭장을 지키겠다고 한 무리의 여우들을 집어넣은 셈이라고 가디언은 비유했다.

가디언은 "이방카의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진심이라면 그녀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것"이라며 "우리가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트럼프의 각료들과 비슷한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방카와 석유기업 중 누가 승리하느냐의 문제는 트럼프가 기후변화 영웅과 악당 중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 것인 지 결정할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악당들이 승리하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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