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좌)과 그의 사촌동생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꼽히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55)가 연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그의 사촌 형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65)과의 관계와 ‘장씨 집안’ 사촌간 경제를 보는 시각차에도 관심이 쏠린다.
◇ 장하성-장하준, 호남 ‘천재 집안’ 사촌형제
1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장하성 정책실장과 장하준 교수의 가문은 호남에서 ‘천재 집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손꼽히는 명문가다. 할아버지 시절부터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 장관, 국회의원, 교수, 의사 등 사회 지도층을 대거 배출했다는 이유에서다.
둘의 형제세대만봐도 청와대에 입성한 장하성 정책실장과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된 장 교수를 비롯해 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광주대학교 교수, 과학철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 상’ 수상자 등 사회 저명인사들로 빼곡하다.
특히 장하성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 가운데 유일하게 유임된 인물로, 문재인 대통령의 3대 경제정책(J노믹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중 하나인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이는 곧 현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 장 정책실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간 경제정책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다는 시각들이 지배적이다. J노믹스 3대축 중 하나인 ‘공정경제’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언론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세 축이 따로따로 움직인 측면이 있고 정부도 반성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다.
실제 현장에 있는 기업들은 물론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는 근로시간 단축 추진이나 인위적인 밀어붙이기식 재벌개혁은 기업의 존폐를 위협하는 행위란 지적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제논리를 펴는 경제학자들 중엔 장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인 장 교수도 포함돼 있다.
◇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속도감 있게 vs 속도 늦춰야’
장 정책실장은 2014년 발간한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도 소수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장 실장은 이 책에서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 경제 성장에 따른 성과의 대부분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5월 장하성 정책실장을 발탁하면서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사회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고 소개했던 것 역시 이러한 장 실장의 경제 시각을 잘 대변하는 사례 중 하나다.
장 실장은 작년 10월 말 외신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총수 일가의 전횡 방지를 위해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고,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 기업도 확대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당시 자리에서 재계와의 소통 강화로 거래관행을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확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으로 실질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설명했다.
장 실장이 언급한 경제정책 방향들은 당시는 물론 현재도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는 부분들이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경영권 방어에 대한 수단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계 자본이 자회사 경영을 침해하거나 유리한 분위기를 만든 뒤 소위 ‘먹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스튜어드십 코드 역시 빠른 의사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기업에 대한 정부 입김이 강해진다는 부작용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반해 장하준 교수는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복지가 필요하고, 또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선 재벌기업들과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 교수는 지난 17일 본인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솔직히 김정은 위원장과도 타협하는데 재벌하고 왜 타협을 못하겠냐"면서 "대타협은 재벌이 무얼 원하니까 무얼 주자와 같은 도식적인 게 아니라 서로 포용하면서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같은 달 10일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재벌들에 대한 가족경영 비판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가족경영 문제는 인위적으로 빠르게 없애나가기 위해 기업집단에 대한 구조 자체를 와해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인공적으로 재벌의 가족경영을 빨리 없애려고 기업 구조를 와해하려는 것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과 같다"며 "삼성, 현대가(家)를 지켜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온 국민이 키워준 기업을 총수 때문에 와해시키고 엘리엇 같은 외국 자본에게 넘겨주는 것은 큰일 날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기 투기자본의 전횡을 막기 위해선)1년 이하 보유주식 1주에는 1표, 2년 보유는 2표, 3년 이하 보유는 5표, 5년 이하 보유는 10표 등을 주는 ‘가중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 포이즌필, 황금주로는 부족하다"며 "미국 구글과 페이스북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특권 없는 사회 vs 약자에 핸디캡 줘야’
이는 곧 J노믹스의 핵심인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어진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더불어 잘사는 나라, 또 규제완화를 통한 신산업 육성 등을 표방한다면, 장하준 교수는 무분별한 시장주의로 인해 오히려 지나친 불평등과 경제 불안이 초래됐다는 지론이다. 적절한 시장규제가 자본주의를 더욱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견해다.
장 교수는 재출간 간담회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은 먹고 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는 사회가 돼버렸다"며 "국제 경쟁은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경기자들이 참여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약한 나라에게 유리하도록 ‘경기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이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장 교수는 2017년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을 통해서도 신자유주의, 즉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론이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담론을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장 교수는 "(책 출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로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세계 경제에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관계는 10년 전과 유사하게 지속되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 역시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요했던 일들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주52시간·최저임금 인상 놓고도 온도차
이러한 두 ‘장씨 집안’ 사촌의 경제적 견해차는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으로도 연결된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소득주도 성장 과제 해결을 위해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박차, 이를 통한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장 교수는 시장질서 확립에 앞서 복지문제부터 해결돼야 실질적인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등이 가능할 것이란 견해다. 서로 선행돼야 하는 과제를 다르게 보고 있는 셈이다.
장 교수는 "복지국가들의 노동자들은 기술혁신에 저항을 잘 하지 않는다"며 "새 기술이 들어와 일자리를 잃어도 정부에서 실업급여를 주고 2년간 새 일자릴 위한 재교육을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복지 제도를 통해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고 실업보험, 재교육 등을 확대해서 실패를 해도 재기할 수 있게 해주면, 노동자들이 더 진취적이 돼 신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직업 선택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이 신속해지고 신산업 창출이 더 쉬워져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장 교수는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그것보다 더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임금 구조를 만들어놓고, 과도하게 일하고 있으니 노동시간을 단축하자고 한 꼴"이라며 "구조적으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고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를 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견해도 전했다. 장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분야별 차등·금액 등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며 "선진국의 경우 자영업자 비율이 12% 수준인데, 한국은 25%로 너무 높다"고 말했다.
덧붙여 "많은 자영업자들이 생산성이 낮은 치킨집이나 편의점을 하고 있는데,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인데 자본가로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