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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머니랜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7.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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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헐리우드 스타의 집 투어’라고 들어 보았는가. 할리우드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클라크 게이블이 살던 집, 스칼렛 조핸슨의 단골 미장원 등을 구경시켜 주며 할리우드를 누비는 소규모 버스 투어다.

이 책의 저자 올리버 벌로는 2016년 ‘런던도둑정치관광단’이라는 단체에서 동료 언론인 및 활동가들과 ‘헐리우드 스타의 집 투어’에서 착안한 독특한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는 2016년 5월 런던에서 반부패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구소련 및 제3세계 도둑 정치가들 소유의 부동산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의 가이드로 나섰다. 이를테면 석유 부국 나이지리아의 전 주지사가 사들인 벨그레이비어 저택, 블라디미르 푸틴의 옛 동료들이 소유한 웨스트민스터 저택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벌로는 사전 모집한 관광객을 이끌고 국제적 규모로 자행되는 은밀한 돈세탁의 실체를 눈앞에서 확인시켜 주는 한편, 해외로부터의 자본 유입이 런던의 경제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낱낱이 폭로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머니랜드는 ‘런던도둑정치관광단’의 전 세계 버전이다. 목표는 도둑 정치가들이 은닉한 돈의 자취를 좇는 것으로 동일하지만, 무대는 훨씬 광범위해졌다. 벌로의 취재는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직 선거대책위원장 폴 매너포트의 기소에서 시작된다. 폴 매너포트는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같은 부패한 지도자들을 고객으로 두고 미국 정부에 로비를 펴면서 수백만, 수천만 달러를 받아 미국 조세 당국과 은행을 속이다 들통이 났다. 벌로는 매너포트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부자와 권력자의 비밀을 숨겨 줌으로써 세계를 궁핍화하고 있는 시스템"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시스템은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머니랜드다.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머니랜드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벌로의 분석에 따르면 머니랜드는 하나의 시스템이며, 각국의 제도상 허점과 사법관할구역 간의 차이를 교묘하게 악용함으로써 나타난다. 이를테면 영국 본토보다 영국령 저지섬의 세율이 낮다는 점은 머니랜드를 육성하는 커다란 유인이 된다. 영국 본토에 있는 자산을 저지섬으로 옮김으로써 조세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법관할구역의 규제 및 제도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어김없이 틈새가 존재한다. 세법상의 맹점, 조세 조약의 허점 등 그 틈새를 비집고 검은 돈은 법인세나 소득세가 낮은 곳, 본국의 금융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곳 등을 찾아 역외로 몰려든다.

저자는 점점 더 교묘해지는 조세 회피, 탈세, 돈세탁 수법을 일컬어 "과세 당국 대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진화론적 군비 경쟁"의 결과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전 세계적인 층위에서 머니랜드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검은 돈의 흐름을 읽어 내는 틀을 제시한다.


제목 : 머니랜드
저자 : 올리버 벌로
발행처 :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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