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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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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외교통상분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09 08:28

한미·한일관계 방향 설정 옳지만 진정한 ‘가치외교’ 아쉽다



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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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외교통상정책 성적표는 ‘미흡’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이념외교를 펼쳐 사실상의 반일·반미 노선을 걸은 것을 수정하는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신 냉전체제와 북핵 위협이 현실화 되고 있고, 신 보호주의가 국제통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다. 그래도 미국과 일본에 성급한 ‘러브콜’을 보내는데 급급하고, 국내적으로 친미세력의 찬사를 받는 수준의 외교에 머물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는 이미 정치적 화해를 넘어 정말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단계까지 악화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판정한 대법원 판결의 강제집행 문제를 이제는 종국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엄연히 대법원의 배상 최종판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우리 정부가 설립한 재단이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대위변제)해 주려하더라도 이들이 변제금을 자발적으로 수령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일본기업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권리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동맹 70주년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대위변제를 해법인양 제시해버렸다. 일본의 반응이 유보적인 이유다. 우리가 대일 무역 맞보복을 철회했는데도 일본은 대한 무역보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국제중재에 회부해 구속력 있는 국제재판 판결을 받아내면 된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 3조가 일방당사국의 회부로도 중재절차가 진행되도록 이미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법원 배상판결이 국제법 위반임을 국제판례가 확인해주어야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국회가 특별법을 통과시켜 대위변제를 통해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모두 소멸시킬 수가 있다.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한일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문재인 외교가 무시한 이런 진정한 해법이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에 의해서도 방치되고 있다. 바늘 허리에 실을 꿰어 양국간 민감한 현안들을 바느질해 나가려 하는 셈이다.

지난 4월27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워싱턴선언’을 채택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반도에 실효성 있는 핵억지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최대 현안이다. 미국 정상이 강력한 핵우산을 제공하고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문서로 확인했기에 확장억제 체제가 강화됐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대포장된 것은 문제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고 확장억제 체제를 구축한 것은 이미 오래됐다. 북한의 핵 위협의 심화 정도에 비례해 미군의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횟수도 어차피 늘려야 할 일이었다. 확장억제 강화를 정상간의 합의로 선언한 것이 성과라면, 이를 대가로 한국 정상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을 공식 확인해 준 것은 역사적 부담이다.

가장 확실한 핵억지 수단은 자체 핵무기 개발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리면서라도, 어떻게든 핵 개발 포기라는 약속만은 공식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처럼 핵물질 재처리를 통해 수천 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비축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기존의 확장억제 체제를 재확인하고 어차피 강화해야 하는 핵자산 파견을 증대하는 합의에 그친 상황이 아닌가.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과 안전보장 조약을 체결하고 핵을 포기한 실수의 대가를 오늘날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하고 핵 위협에 직면한 상황으로 치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핵을 암암리에 개발하려 해도 개발단계마다 워싱턴선언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미국은 전기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 수출제품을 차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차별적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급감하고 있고, 반도체 분야는 사실상의 기술이전을 요구받고 대중국 반도체 투자를 제한받고 있다. 유럽과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 규제를 받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나,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처럼 자동차와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나라는 없다.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도 대중국 투자를 통한 생산의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이런 미국의 신 보호주의 정책의 구체적 기준이 마련된 것이 지난 1년 동안인데도 정부는 로비는 커녕 그 정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은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수백 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확약했다. 이러한 투자의 대가로라도 정부가 챙겼어야 할 반대급부는 실종된 상태다.

한미FTA를 통해 경제동맹까지 맺고 있는 국가의 대표자가 백악관과 미 의회를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그 생명줄인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의 차별문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동맹국 간 공급망 협력을 심화해 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나, 상대국 핵심 산업의 축소나 공동화를 초래하면서도 투자를 압박하고 핵심 산업정보 제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 70년을 정리하는 정상회담이니 만큼 ‘호혜의 원칙’이 양국 경제동맹의 기본가치가 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어야 했다.

윤석열 외교는 ‘한미 가치동맹’을 공언하고 워싱턴선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다.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러한 ‘가치의 공유’를 넘어 ‘가치 동맹’을 결성하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배타적 블록에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윤대통령은 직접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고 언급했고,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지원을 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진정한 가치외교는 그걸 대놓고 선언해서 주변 전체주의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처럼 국가책임자가 나서서 이를 외쳐대는 것이 오히려 그러한 가치외교를 정말로 펼쳐나가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의 이념외교의 유산을 떨쳐내려 하면서 또 다른 이념외교를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선린·실용외교의 길이 다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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