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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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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각] 아파트가 왜 이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12.15 17:01
전경우

▲전경우 미래커뮤니케이션 대표

띵 똥 띵 똥, 하는 벨소리가 울리고 이어 경쾌한 반주가 이어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윤수일의 ‘아파트’. 1982년 6월에 나온 이 노래는 가죽 재킷에 장발 머리를 한 서구적 외모의 윤수일을 최고의 스타 가수로 만들었다. 난생 처음 보는 프로 스포츠에 열광하며 삶의 고단함을 잊던 시절이었다. ‘아파트’는 대한민국 모든 차트를 휩쓸며 최고의 인기 가요로 등극했다.

‘아파트’는 낭만적이지만 쓸쓸하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고,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면,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가 있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는 한강에 있는, 제3한강교라 불렸던 한남대교쯤이지 않았을까. 아파트는 압구정이나 잠실 어디쯤에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가 기다리던 아파트는 달콤하였으나,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찾아 온 아파트에는 그녀가 없다.

노랫말은 쓸쓸한 여운을 남겼으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목청껏 ‘아파트’를 따라 불렀다. 사랑하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초콜릿을 왕창 삼킨 것처럼 달작지근하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산다는, 이왕이면 사랑하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으면 더 좋을, 그런 아파트에 살아볼 날을 꿈꾸었을 것이다.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면서 ‘복부인’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아파트 분양을 두고 부정, 불법, 사기가 난무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가 남의 동네 남의 이야기였고, 그러한 뉴스도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어느 여자는 빨간 바지를 입고 다니며 아파트를 사고팔아 엄청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파트는 쉼 없이 지어졌지만 늘 부족했다. 투기 바람에 전세 가격이 치솟고 가난한 세입자가 자살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1980년대의 일이다.

어렵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 통에 산비탈, 하천변에 움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산 적도 있고, 외국 원조로 재건주택이라는 흙벽돌로 지은 집, 국민주택이라는 플라스틱 조립 주택에서 살기도 했다. 연탄으로 밥을 해 먹고 방을 데워 살기도 했다. 연탄가스를 들이마시고 생떼 같은 목숨을 잃기도 했고, 연탄을 사겠다며 긴 줄을 서기도 했다. 연탄을 들여놓고 김장을 마쳐야 비로소 겨우살이 준비가 끝났다고 했다. 보일러 놓인 집이 부러운 시절도 있었다. 형편에 따라 사는 집도 달라졌다.

1964년 서울 마포에 6층짜리 10 개동 총 642가구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대단지 아파트가 처음 선보였다. 1970년 마포 와우아파트는 지은 지 넉 달 만에 통째로 무너져 33명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신도시 200만가구를 건설한다며 바다모래 파동을 겪기도 했다. 아파트는 서민들의 내 집 한 칸이라는 소박한 꿈이었지만, 누구에게는 대박을 터트리는 재산증식 수단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파트가 지어지고 또 지어졌지만 여전히 아파트가 모자란다고 난리다. 그 많은 아파트는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아파트가 지천으로 늘렸는데, 왜 아파트가 없다고 난리를 치는 것일까.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다. 전문가들이 늘렸고, 대통령도 자신 있다고 했는데, 왜 아파트 때문에 소동이 나고 있는 걸까.

빵이 아니라서 밤새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국민들 가슴에 불을 질렀던 장관은 ‘난 몰라’ 하고 가 버렸다. 빚내서 집사란다고 입에 거품을 물던 그들이, 이제는 빚을 내지도 못하고, 빚을 내서도 집을 살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마음 놓고 세를 살 수도 없게 되었다. 국민들 영혼이 탈탈 털리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맞다. 아파트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리가 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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