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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투자와 투기의 경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1.19 15:21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글로벌매크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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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광풍이다. 코스피(KOSPI) 3천 시대가 열렸다. 주역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다. 2020년 한해 동안 거래소 시장에서 47조 규모의 주식을 매수했던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도 벌써 8.7조원을, 코스닥까지 합치면 10거래일 만에 10조원 이상 순매수했다. 코스닥 및 벤처 열기가 뜨거웠던 1999~2000년과 적립식 펀드 열풍이 거셌던 2006~2007년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열풍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월가의 전설적인 그루(guru)들은 글로벌 주식시장의 버블 가능성을 언급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고용 부진 속에 2030 청년들이 빚을 내서, 생업이 아닌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다며 우려한다.

최근 주가 상승이 과도한 측면은 있다. 주식시장 광풍은 새드엔딩(sad ending)으로 끝나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코스닥시장의 강세는 2000년 3월 고점 이후 한달 만에 -27.3%, 1년 만에 -73% 하락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식이나 자산가격이 버블인지는 지난 뒤 확인될 뿐이다. 국내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열기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투기적인 징후도 심하지않다. 세 가지 측면을 살펴 봤을 때 그렇다.

우선, 경기는 좋지 않은데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투기로 보기는 어렵다. KOSPI는 지난 한달 동안 15%, 6개월 동안 46% 올랐다. 실제 경기에 비해 분명 가파른 주가 상승이긴 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주식시장 버블 국면과 지금 한국 증시 상승을 비교할 바가 못 된다. 80년대 일본 닛케이, 90년 미국 나스닥, 2000년대 중국 증시와 원자재, 2015년 이후 ‘팡플러스(FANG+)’는 5~10년에 걸쳐 400~1000% 올랐다. 버블은 수년간 누적되다가, 피크(Peak) 직전 1년 동안 화려한 불을 뿜어 내고 역사 속으로 가라 앉는다. 버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과거 사례들은 지금 KOSPI보다 훨씬 더 장기간, 더 격렬하게 올랐다.

두번째, 최근 한국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수준이 달라졌다. 최근 개인 투자자들은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매수하고 있다. 이전처럼 소문이나 뉴스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중소형주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 패턴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연초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주가가 최근 실적에 비해 싸지는 않다. 그러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삼성전자에 대한 주식 투자를 투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번째, 과거 투자 붐이 투기로 바뀌는 것은 기업들이 본업에서 벗어날 때다. 1920년대 후반 미국, 즉 대공황 직전 미국과 90년대초 일본, 99년 닷컴버블 당시 개인 투자 열기도 광풍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의 모럴해저드가 더 심했다(기업들의 주식/부동산 투자, 회계 분식 등). 예컨대, 대공황 당시 기업들은 생산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주식투자에 몰두했다. 80년대 후반 일본 기업들은 이익의 3분의 1에서 절반 가량은 부동산 투자를 통해 얻었다. 2000년 닷컴버블 당시에도 엔론과 같은 대기업들의 회계부정 사태가 문제가 됐다.

경제학자 킨들버거는 ‘건설업자가 집을 집기 위해 땅을 사는 것은 투자이고, 그저 땅을 더 비싸게 팔겠다고 땅을 더 사는 것은 투기’라고 정의 한 바 있다. 빚을 내어 주식을 투자하는 것이 분명 건전한 투자 방식은 아니다. 아직 경험이 적은 투자자들의 참여와 이탈은 주식시장에 다소 불안한 변동성을 야기시킬 수 있다. 정말 광풍에 가까운 자산 가격 버블과 투기 국면에서는 생산적인 일에 집중해야 하는 기업들이 딴 짓을 한다. 이러한 국면이라면 주식시장에서 뛰쳐나갈 필요가 있다.

조급함과 분노에 따른 투자 광풍은 위험하다. 그러나 더 떨어지기 쉽지 않은 낮은 금리와 덜한 규제 덕에 주식시장이 나은 대안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주식투자가 위험할 때는 기업들마저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는 않고, 자산가격 상승에 취할 때다. 자산가격의 과속을 경계해야 하나, 가격 상승 자체가 투기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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