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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만 74페이지"...손태승 징계취소에 '한시름 던' 금융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8.27 16:45

재판부 "내부통제 의무 위반 이유로 제재 가할 근거 없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규정 이용 법치행정 근간 흔드는것"



'사모펀드 사태 연루' 금융사 CEO 제재수위 경징계로 낮아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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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제기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불복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금융사들도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소송은 현재 금융위원회에 계류 중인 금융사 전현직 CEO의 제재 수위를 확정할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재판부가 손 회장에 중징계를 내릴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서 현재 중징계를 받은 대다수의 금융사 전현직 CEO의 제재 수위도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또 향후 금감원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제재 수위를 결정할 때도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부 "판결문만 74페이지"...향후 파장 고려 판결문 작성 고심한듯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 위수현, 김송)는 27일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등 취소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에 대해 명시했다. 재판부는 "지배구조법령은 금융기관에 내부통제의 기준이 되는 내부규정을 마련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이 사건은 이러한 내부통제와 관련한 은행 내부규정에 반드시 포함될 내용이 흠결돼 있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재판은 판결문이 74페이지에 달하는 만큼 요지부터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 결과가 손 회장은 물론 향후 금융사 제재 수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들어 판결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인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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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너지경제신문


특히 이번 소송은 금융사 CEO가 금감원의 제재심에 불복해 제기한 첫 소송이라는 점에서도 감안됐다는 의미가 크다. 실제 재판부는 당초 20일에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일주일 미뤘다. 법원은 연기 사유에 대해 "논리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은 작년 초 DLF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 부실 등의 책임을 물어 손 회장에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내렸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경고 이상은 3~5년 금융사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감원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금융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을 근거로 DLF 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을 겸임한 손 회장에 중징계를 내렸다. 반면 손 회장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과 관련해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라’는 의미이지 금융사고가 터졌을 때 경영진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라며 맞섰다.

손 회장은 DLF 사태뿐만 아니라 지난 4월에도 라임 사태와 관련해 같은 이유로 문책경고를 받았다. 금감원은 DLF 사태에 연루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전 하나은행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전 대신증권 사장),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전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 사모펀드 사태에 연루된 다수의 금융사 CEO들에게도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내렸다. 경영진에 대한 제재는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금융위는 작년 11월 제재심이 끝난 라임펀드 판매사인 KB증권, 대신증권의 전현직 CEO에 대한 제재 수위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이날 1심 판결을 본 이후 다른 사모펀드 관련 CEO에 대한 제재를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DLF 사태 중징계’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 1심 유리...금융사들 ‘안도’ 

 


재판부는 이날 손 회장에 대한 제재조치 사유 5개 가운데 ‘금융상품 선정절차 마련의무 위반’만 인정하고 다른 4개 사유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이 손 회장에 대해 내린 문책경고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등 ‘준수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해 제재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그럼에도 피고가 법리를 오해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처분사유를 구성한 탓에 대부분의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금감원이 적법한 것으로 인정된 처분사유 한도에서 손 회장을 대상으로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제재 관련 재량권 행사를 다시 하라"고 판시했다.

손 회장이 1심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같은 사유로 소송을 제기한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의 판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재판부가 "금융감독당국이 문제점에 관한 책임을 사후적으로 묻기 위한 방편으로 이 사건 내부통제규범 마련 의무 부과 규정을 이용한 것은 법치 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조한 점을 금융권은 주목하고 있다. 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의 제재심이 법치 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재판부의 지적은 금감원 입장에서도 상당한 타격"이라며 "이번 소송으로 현재 계류 중인 대다수 CEO들의 제재 수위가 경징계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번 판결 직후 배포한 자료에서 "사법부의 1심 판결을 존중한다"며 "판결문이 입수되는 대로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판단 기준 등 세부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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