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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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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아무도 책임 없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8.29 10:20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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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몇 주 전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흥미로운 칼럼을 시리즈로 게재했다. ‘나는 틀렸습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는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글이었다. 그는 2021년에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필요 없다고 단언하였지만 1년도 안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판단이 오류로 드러난 점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 것이었다. 당시 이미 천문학적 재정지출과 물류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의 경고수위가 높아진 상황이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려던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에 힘을 보태려는 의도에 눈이 가려져 판단이 잘못됐음을 밝힌 것이다.

이 시리즈 칼럼에서 ‘세계는 평평하다’는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 역시 중국에 관한 자신의 견해가 오류였다고 인정하였다. 프리드먼은 전 세계가 연결된 하이퍼 커넥티드 세상을 주장하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는 본인의 견해를 톤다운하기도 하였다.

지식사회는 외부로부터의 비판에는 자유로울 필요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부로는 엄격한 자기평가와 비판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설정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 작년 NDC 목표 상향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는 ‘선언적, 권고적’인 목표일뿐이므로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틀린 관점인데, 기본법과 시행령에 감축목표가 수치로 제시된 이상 우리나라의 법체계 상 이는 구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이 들어오면서 지금은 근거가 없어진 에너지기본계획은 물론이거니와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등 수많은 정부계획이 이 감축목표에 의해 수정되어야 한다.

기본계획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의 거버넌스 특성 상 이렇게 정부목표가 정해지면 공적섹터와 민간섹터,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까지 일산불란하게 그 목표를 향해 정책이 재정렬된다. 결코 선언이나 권고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는 ‘Build Back Better’를 구호로 호기롭게 시작하였지만 예산확보에 실패함으로써 난항을 겪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통해 2050 탄소중립 목표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게 되었다. 분권주의(Federalism) 하의 미국에서는 감축목표가 우선이 아니라 양당 합의를 통한 예산이 먼저 확보된 후 그 목표는 자율적으로 맞춰 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탑다운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최근 영국 대법원은 영국 정부가 2030 NDC 목표달성을 위한 상세한 감축목표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판결을 내렸다. 환경단체가 영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이 소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골조로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산업부문과 발전부문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그것도 소수점 단위까지 찍어서 법적 구속력까지 갖춘 형태로 제시한 우리나라는 COP26 개최국인 영국보다 너무 앞서간 셈이다.

작년부터 이어져온 그린플레이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후위기로 인한 열파와 가뭄, 홍수, 식량가격의 폭등, 코로나 등 100여년 만에 한 번 터질만한 이슈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시점에서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정책을 재정비하고 있다. 해외발 주요 뉴스를 보면 각국의 원자력, 석탄, 재생에너지, 수소 정책이 연일 수정되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NDC 목표달성과 탄소중립을 주제로 한 행사가 많다는 점은 비단 필자만 우려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연금고갈, 소득분배, 잠재성장률 제고, 에너지 안보와 국방안보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자기반성이 절실한 때이다.

우선 지식사회가 반성해주길 바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100%를 주장하던 이들이 지금 와서는 원자력 이용 내지 심지어 확대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 역시 자기오류를 인정하는 하나의 제스처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소모적 논쟁으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였다. "나는 틀렸습니다"라는 고백은 용감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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