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공기업 개혁은 보유자산 매각 등 자구노력 형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한다. 그러나 시늉만 내는 반짝 정책일 뿐 실효성 없이 흐지부지됐다.
공기업 개혁은 국민의 고통 분담에 앞서 공기업의 솔선수범 등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추진 없이 전시용으로 흐를 경우 국력 낭비를 부르고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도돌이표 정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물가관리 당국으로서 현재 물가불안 속에서 대표 공공요금인 전기요금 조정으로 국민의 고통분담을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에 설득력 있는 한전의 자구노력 계획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상반기에 발전자회사 등 전력그룹사 사장단과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고강도 자구책을 추진하고 있다. 6조원 이상의 재무개선을 목표로 국내 부동산, 해외 발전소 등 매각 가능한 자산을 모두 팔아 경영 혁신을 이루고 국민 전기요금 부담도 완화하겠다는 목표다.
이 재무구조 개선방안의 무게중심은 ‘자산매각’에 집중돼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부채를 털어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찾자 유보해뒀던 자산을 여론에 떠밀려 급하게 팔아치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에너지자원산업의 역사를 보면 에너지 공기업들은 자구노력 명분으로 걸핏하면 자산매각을 추진해왔다. 사원들의 복리후생비 삭감 등 허리띠를 졸라매 원가를 줄이는 작업보단 자산매각이 좀 더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란 뜻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외 자산에 투자했다가 정치권과 국민여론에 밀려 급하게 파는 것을 되풀이해 공기업에 손해를 끼치면 결국 국민 피해로 귀결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해외석탄화력발전 같은 경우 정부 압력이나 국민여론에 떠밀려 매각을 서두르다가 장기적인 먹거리 상실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탄소중립을 선도하던 독일 등 유럽국가들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석탄화력발전 가동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MB)정부 당시 자원비리 의혹 제기 이후 알짜 광물 등 자산 매각도 특별한 성과를 내지못했고 최근 에너지대란 상황서 자원안보를 약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현재 한전은 해외 석탄 발전소와 광산 등을 정리해 1조9000억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필리핀 현지 전력회사(SPC)와 함께 세부 지역에 구축한 화력발전소는 매각 주간사 선정을 완료한 상태로 연내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발전사가 보유한 해외 석탄광산에 대한 매각을 검토하기 위해 공동 매각 협의체도 구성했다. 기타 해외 석탄발전 사업의 경우 사업·금융계약상 지분 매각 제한 조항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경영권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가스발전사업 지분 일부도 매각을 추진한다. 전력업계에선 신규투자 당시 사업 경제성 등 타당성 검토를 면밀히 했을텐데 갑자기 자산매각을 하면 그대로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산매각 등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하면 사업 추진에 앞서 사업 경제성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안했다는 것으로 당연히 관련자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 상황 상 적자 규모가 점점 커지는 추세에서 자산과 지분 조금 매각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내년에도 적자면 이번에는 무엇을 매각할 것인가. 결국 전기요금 현실화가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전은 ‘매각 가능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한다’는 원칙 하에 국내 보유 부동산도 조기에 매각해 7000억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경기 의정부변전소 잔여 부지 등 즉시 매각이 가능한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15개소 중 2개소를 84억원에 매각 완료했으며, 1000억원 상당의 부동산 1개소에 대해서는 현재 입찰이 진행 중이다. 한전기술 용인사옥은 1000억원에 매각을 완료했고, 사택과 유휴 부지 등은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재 개발 중인 부동산 3개소는 용도 상향 후 매각을 추진하고, 발전소와 변전소 부지로 사용되고 있어 매각이 어려운 부동산은 대체 시설을 마련해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공기업들이 하나둘씩 대형 부동산 자산매각 계획을 들고 나오는 가운데 이들 자산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자산매각을 하더라도 옥석을 제대로 가려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자비용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사업을 접어야 하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매각 등 처분일정에 쫓겨 헐값에 매각하고 투자 비용도 제대로 못 건지면 결국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이종수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전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수적인 자산과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라며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급하지만 세계적인 물가 상승을 봤을 때 정부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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