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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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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유연하고 현실적인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립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15 09:55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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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


작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의해 조만간 관련 기본계획이 마무리될 것이다. 이에 따라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NDC) 목표 상향조정이 반영된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발전, 산업, 수송 등 주요 부문에서의 감축목표가 주어지게 된다. 학계, 시민단체, 정치권, 산업계 할 것 없이 모두 촉각을 세우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온실가스 감축 이행 로드맵이 상당한 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이다. 즉, 온실가스 감축 이행 로드맵이 발표되면 이에 맞춰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소수급계획 등이 따라야 하며 또 이들은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 송변전 설비계획 등 여타 기본계획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들 모두를 구조적으로 소수점자리 숫자까지 맞춰 가면서 정합적으로 맞춰갈 수 있는 마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NDC 목표를 법제화하지 않고 정부정책 서류상으로 선언되어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년 말 미국 의회조사처(CRS)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30 NDC가 법제화돼 있는 국가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중 하나가 독일인데, 연방기후보호법(Bundes-Klimaschutzgesetz)에서 2030년 NDC 목표를 1990년 대비 65%로 명시하고 있다. 법제화된 것은 우리와 동일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메커니즘은 사뭇 다르다. 독일은 NDC에 의해 탈 석탄을 진행한다고 하지만 탈 석탄 경매라는 시장 인센티브 방식의 넛지 형태로 유도한다. 게다가 그렇게 자신하던 탈 석탄 경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폐지하기로 한 석탄발전기도 오히려 재 가동하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EU국가에서 화석연료든, 재생이든, 원자력이든 전기를 사가지고 오면 그만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감축 로드맵을 법적 구속력 있게 받아들여 이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해야 하고 그에 의해 30년 이상 된 석탄발전이 퇴출되는 식의 톱다운 방식을 취한다. 경직된 정책을 취하게 되어 비가역적인 퇴출이 이루어질 경우 독일처럼 대처할 수 있는 방안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더더욱 유연한 거버넌스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 수립되는 온실가스 감축로드맵은 타 정책과의 정합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연성 메커니즘이 반영되어야 한다. 로드맵은 매 5년마다 수립되므로 11차 및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장기천연가스 수급계획, 배출권 할당계획, 수소수급계획 등 여타 기본계획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번에 신중하게 수립되지 않으면 앞으로 5년 동안 끊임없이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된다. NDC는 특히나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2030년까지라는 점에서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자원 증가에 따른 계통 안정성과 예비력 확보를 위한 시장설계와 시뮬레이션에만 적게 잡아도 3~4년이 걸린다. 여기에 송변전 신규 설비 투자와 주민 수용성 해소, 계통 투자 관련 한전의 추가 재정 이슈, 0.1초 내에 대응해야 하는 인버터 유발 정전 대응책 마련 등도 시일이 걸리는 사안이다.

더군다나 2050년까지 탄소중립은 오랜 세월 우리가 국내 경제와 산업 역량을 갖춰가면서 진행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무탄소 전원 등 국내 에너지 산업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감축 로드맵이 설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신산업 성장 자본 확충을 전제로 하지 않은 2050년 탄소중립은 그 무렵 인구절벽, 재정절벽, 연금절벽의 3대 절벽위기를 넘어갈 역량마저도 상실케 하는 무력한 정책일 뿐이다.

끝으로 금번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은 2021년 발표 때와는 달리 유럽 탄소국경조정제, 칩4 동맹, 핵심원자재법 등 자국 제조업 산업을 전폭 지원하려는 그간의 변화도 반영되어야 한다. 이제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배출권은 더 이상 감축만의 이슈가 아니라 통상과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쌓아온 성과가 한순간 물거품으로 사라지기 쉬운, 그야말로 글로벌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우리는 후세대에게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환경을 동시에 물려줘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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