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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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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에너지 요금에 대한 단상(斷想)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10 09:05

최기련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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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


 황금연휴가 겹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그러나 올해는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 인상에 대한 생뚱한 정치 바람으로 마음이 무겁다. 정치권이 그 결정 주체로 나서면서 일이 꼬였다. 시장 논리보다 국민 여론과 정치적 득실을 먼저 고려하는 가운데 장기 자원배분 효율성은 뒤로 밀렸다. 정치권은 물가 우려를 핑계로 정부 등 이해당사자들 간의 시장조정 기능을 무력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따라 한 달 이상 미뤄진 올해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급하게 추진된 것 같다. 당정은 ㎾h당 7원 안팎 인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가구당 2000원대 중반의 전기요금 부담 증가가 예상된다. 이렇게 올려도 전기와 가스 가격은 판매원가에 미달한다. 결국은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총괄 원가 보상’ 원칙을 부여받은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들은 판매 손실을 ‘고민 없이’ 채권발행이나 미수금 계정으로 처리하는 정책 실패 유발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한전 부채가 지난 1년간 70% 이상 늘었다. 한전채의 무한 발행으로 민간 자본 시장 장애를 초래했다. 정치권에서는 무작정 공공자산 매각이나 관련 공기업 수장 사표 제출을 요구하는 ‘체면치레’를 했다. 화급한 적정 가격수준 설정이나 공기업 경영정상화, 그리고 국리민복 증진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이 변죽만 울리는 정치적 언동일 따름이다. 결국 정치권의 노골적 개입은 새로운 정치 실패를 예고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에너지정책 실패는 어디서나 가능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은 공급망 효율성 확대에 실패했고 되레 인플레이션 가속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학계는 분석한다. IRA은 미국 내 청정에너지 전환 가속을, 반도체법은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목표로 투자기업에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가용 전문인력 부족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인력 부족은 고용시장 과열과 인재 유치경쟁으로 사업비용이 10%쯤 추가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4%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연방준비제도(FRB) 물가 상승 목표(2%)의 두 배에 달한다. FRB가 최근 기준금리를 0.25% 추가 인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국 정부는 이제 장기 에너지 전략에 치중하고 있다, 단기시장조정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지난 4월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국 경제포럼(MEF)’ 화상 정상회의를 주재, 녹색기후기금(GCF)에 10억 달러(약 1조3200억원) 제공을 밝혔다. 아마존 보호에도 추가지원(5억 달러)을 의회에 요청했다. 이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노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탈 탄소 에너지 확대, 아마존 등 중요한 숲의 삼림 벌채 종식, 불화수소 등 강력한 비(非)이산화탄소(non-CO2) 기후오염 물질 대처와 탄소순환관리 증진 등 4가지 핵심 분야에 대한 노력을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는 우리 윤석열 대통령도 참여했다.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두 가지 근간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이다. 이 중 정치적 자유주의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나 ‘경제적’ 자유주의는 퇴보할 수 있다는 관련 학자(Francis Fukuyama:‘The End of History 1989’ 등)들의 기존 주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가나 종교와 이념, 노조 등 강력한 사회 주체들의 과도한 관여와 영향력을 행사에 따라 건전 경제성장과 배분에 장애가 발생했다. 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제대로 진전될 수 없었다는 것이 지난 세기말∼이번 세기 초까지 입증된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지난 2년 동안의 경기 둔화와 함께 ‘인플레이션’ 위기가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닥쳤다.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30년 동안의 저물가 시대인 셈이다. 이 결과로 기후변화 대처와 에너지전환 투자 증가추세에 변화를 초래한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이후 이런 변화는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진점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불확실성이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으로 정착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만 ‘불가역적’ 변화인 것은 분명하다.

이념 과잉 에너지정책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 양면에서 모두 실패할 가능성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문제 진단과 분석, 그리고 대안 제시라는 과학적 위기 대응 전략을 과감하게 펴야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외교와 대외전략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전략에 쏠려 있다. 세부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에너지 유관 분야가 중심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탄소중립, 녹색성장 등 세계를 선도한 이념정책을 시행했지만 큰 효과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에너지 부문이 지속성장 기반이 되기보다 우환과 병폐가 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해야 한다. ‘실없는 그 언약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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