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현대차 북경 3공장 전경.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중국 대도시 청년들 사이에서 ‘잔반 도시락’(剩菜盲盒)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남은 음식을 안보이게 재포장해 저렴한 가격에 파는 일종의 ‘블라인드 박스’다. 중국인들은 따뜻한 음식을 차려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치솟는 실업률 등 경제 상황이 나빠지며 소비패턴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최근 중국의 경제 환경과 기업들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세계의 굴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중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는 해당 예상치를 5.9%에서 5.5%로 낮춰 잡았다.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는 기존 5.7%에서 5.2%로 내렸다. 신용평가사 S&P 역시 5.5%에서 5.2%로 인하했다.
중국의 각종 경제 선행 지표가 부실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나라의 5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5% 줄어 코로나19 방역 기저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같은 달 소매판매(+12.7%)와 산업생산(+3.5%)는 전월 수치보다 둔화했다.
제조업 수익성 악화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NBS)이 집계한 1∼5월 공업이익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18.8% 감소했다. 공업이익은 해당 분야 연 매출 2000만위안(약 36억원) 이상 기업들의 수익성 동향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공업이익은 4% 감소했다.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른 16~24세 청년 실업률은 5월 20.8%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베이징대 거시경제연구소 루펑 소장의 말을 인용해 "7∼8월 신규 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 가세하면 실업률은 더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중국은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사실상 낮추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최근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기존 3.65%에서 3.55%로 1%포인트 내렸다. 5년 만기 LPR도 기존 4.3%에서 4.2%로 낮췄다.
우리 기업들은 코로나19 엔데믹 기조에도 중국 경제에 활기가 돌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초고속성장의 곁불을 쬐며 함께 몸집을 불려온 나라다. 다만 분위기가 달라지며 작년 3월부터 현재까지 15개월 연속 대중국 무역적자를 내고 있다.
현지에 직접 진출해 적극적으로 소비재를 팔고 있는 삼성·현대차 등은 소비패턴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도농 격차가 더 커지고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는 현상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폴더블폰 등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고성능차를 앞세워 현지에서 ‘제2의 신화’를 쓰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을 상태다.
우리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중국 업체들의 구조조정 기조 역시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이다. 성장 산업인 전기차 분야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보조금 혜택을 줄이면서 다수의 중국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경영난을 겪고 있다. 여기에는 ‘테슬라 킬러’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니오(NIO)도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전기차 브랜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전문가들은 환경이 복잡한 만큼 우리나라가 반도체 등 우위 분야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단행해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무역적자 장기화 원인이 소수의 핵심산업에 편중된 수출구조 탓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우리나라 11개 기술 분야 중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으로 꼽히는 ‘ICT’·‘SW’ 등 5개 분야가 중국에 뒤쳐졌다고 진단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망 분야 중심으로 수출품목을 다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재는 무역수지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반도체·2차전지 등 한국이 비교우위를 지닌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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