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이 대표 구속영장에 이례적으로 긴 892자 분량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핵심은 혐의 소명 부족 보다는 방어권 보장과 증거 인멸 우려 불인정에 가까웠다.
유 부장판사는 백현동 의혹 관련 배임 혐의에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사업 참여 배제 부분은 피의자의 지위, 관련 결재 문건,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밝혔다.
특히 위증교사 혐의에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증거인멸 우려와 관련, "위증교사 및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물적 자료에 비춰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판에 필요한 증거를 이미 확보한 만큼 이 대표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는 구속 수사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대북송금 의혹에는 "피의자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번복하면서까지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지만 실패한데다, 구속 기각 사유도 여권 공격 보다는 당 내홍 재료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총선 직전 불거진 극심한 당 내홍과 ‘위기 돌파용 약속’의 파기는 문 전 대통령 사례와도 유사하다.
△ 文, 총선 전 분당 뒤 정계은퇴 약속 번복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방문해 입원 중인 이재명 대표를 만난 모습.연합뉴스 |
문 전 대통령은 이후 야권 분열 총선이라는 불리한 구도에서 당 본산인 호남마저 국민의당에 잃을 위기에 처하자, ‘정계 은퇴론’이라는 배수진을 쳤다.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에서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거 결과는 국민의당이 호남 의석 대부분을 ‘싹쓸이’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호남이 저를 버린 것인지 더 노력하며 기다릴 것"이라며 사실상 약속을 파기했다.
이 대표 역시 현재 극심한 내홍으로 인한 위기를 수습코자 지난 6월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언하고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그러나 혁신위원회는 각종 논란 끝에 사실상 좌초했고,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지난 21일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부결을 호소하면서 파기됐다.
이 가운데 이 대표가 위기를 딛고 야권 중심으로 부상했던 문 전 대통령 사례를 따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먼저 문 전 대통령 시기 혁신위는 혁신위 내부 논란 보다는 계파갈등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 이에 혁신위 실패 책임도 반대파와 나눠 분담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출범 시켰던 혁신위는 시작부터 끝까지 천안함·노인 비하 등 혁신위원장 문제로 논란을 빚었다. 이에 친명계와 비명계를 가리지 않고 ‘박한 평가’가 쏟아졌고, 실패한 카드로 귀결됐다.
또 문 전 대통령은 혁신위 실패 이후 2선 후퇴 및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전권을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 위임하는 등 자세를 나췄다. 그러나 이 대표는 옥중에서도 당 대표직을 유지하며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뜻을 친명계를 통해 이미 공공연히 드러낸 상황이다.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이 호남 민심을 겨냥해 했던 약속은 이미 총선 불출마한 상황에서 소속 당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하지만 이 대표가 했던 불체포특권 포기는 오는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등과 무관한 본인의 비위 혐의 관련 약속이었다.
△ 朴, 가결파와 친O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대구 달성군 현풍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
‘국정농단 사태’로 수사 받던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0일 이 법정에서 약 9시간에 걸친 영장 심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러 법원에 출석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 대표도 법원 영장 실질 심사를 받은 헌정사 첫 제1야당 대표가 됐다. 구속 심사에 소요된 시간도 박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공통점은 두 사람의 구속 심사가 사실상 자당 의원들에 의해 결정됐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모두 비박, 비명 등 당내 비주류 반대파들이 상대 진영에 협조하면서 성립할 수 있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체포안 가결파 색출 목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보수당에서 탄핵 찬성파 비토 심리가 거셌던 것과 흡사하다.
구속 심사를 전후로 한 당내 사정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민주당은 이 대표 구속 심사가 진행된 전날 친명계 홍익표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홍 의원은 당선 일성에서 "민주당이 하나의 팀이 돼서 이재명 대표와 함께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힘을, 동력을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 구속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는 탄핵 정국 당시 ‘진짜 친박’(진박)으로 불렸던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로 선출됐던 것과 유사하다.
2016년 12월 정 부의장은 비박계로 분류되던 나경원 전 의원을 꺾고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그는 이후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뒤에도 쭉 원내대표를 맡았고, 탄핵 직후인 2017년 4월에는 당 비대위 좌초로 당 대표 권한대행도 역임했다.
이렇게 탄핵 이후에도 주도권을 쥔 친박계는 선거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비박계를 차츰 잠식했고, 지난 총선에서는 보수 대통합을 이뤘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은 구속 심사 때부터 혐의가 상당수 인정됐고, 이 대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당장 구속 위기를 넘긴 이 대표가 총선 전 재차 구속 심사를 받거나 유죄를 인정받아 구속될 가능성도 크지는 않다.
다만 법원이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작지 않은 불씨를 남긴 만큼, 민주당 내홍의 완전한 제압도 차기 총선 결과 등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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