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리포트 내면 욕만 먹는데 누가 쓸 수 있겠어요."
금융당국이 매수 일색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나섰지만 증권업계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취지는 이해하나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기업과 주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매도’ 목소리를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지난달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역대급 사건 이후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리포트를 더욱 꺼리는 분위기다. 당시 투자자들은 해당 애널리스트를 막아서고는 그의 가방을 붙잡고 항의 겸 비난을 쏟아냈다. 그가 이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 건 이차전지 대표주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작성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한 주식 채널에 출연한 A 증권사 관계자가 "B 종목은 현 시점에서 매수하기엔 너무 오르긴 했다"고 스치듯 언급하자 해당 증권사에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말 한마디로도 강성 주주들에게 공격을 받는 상황이니 매도 리포트를 작성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위가 된 셈이다.
애널리스트들에게는 투자자의 항의전화만큼이나 기업과의 관계성도 리포트 작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부 대기업들은 매도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에게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기업 탐방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도 리포트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1년 동안 국내 30여개 증권사가 낸 매도 리포트는 전체의 0.12%에 그쳤다. 이에 금융당국은 올 초부터 증권사 리포트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테스크포스(TF)를 꾸려 방안 모색에 나서고 있다. 매도 리포트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도 변화는 필요하다며 관행 개선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변화는 환영하지만 무턱대고 매도 리포트를 강요할 게 아니라 매도 리포트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며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과거와 같은 명성은 찾지 못하더라도 신뢰도가 추락하는 건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과 증권업계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투자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는 무분별하게 헐뜯으면서 정체가 불분명한 불법 주식 리딩방을 좇는 행태가 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애널리스트의 의견이 본인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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