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현대차 공장. 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종전 시점을 예측하기 힘들어 현지 공장 처분에 골머리를 앓는가 하면 주문제작한 제품의 잔여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셧다운’ 기간을 이달 말까지로 연장했다. 이 곳은 지난해 3월 가동을 멈췄다. 이후에도 부품 조달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계속해서 휴업 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상태다.
타스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최근 들어 꾸준히 현대차가 공장을 다른 사업자에 넘길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러시아 딜러회사 아빌론, 중국 체리자동차 등 후보군도 다양하게 거론된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공장 재가동은 어렵지만 매각결정을 내리기도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렸고 현대차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도도 높기 때문이다. 프랑스 르노 등 앞서 러시아에서 철수한 업체들은 공장을 헐값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업계도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인한 불확실성을 안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경우 일부 쇄빙선이 완성됐음에도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쟁 이전 수주했던 수십척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도 계약 취소 수순을 밟고 있다.
삼성전자도 판매 시장 자체가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유럽 내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해 2011년 이후 3분기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영향력이 줄어든 결과다. 점유율은 32%로 1위를 유지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를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 중인 중국 샤오미는 점유율을 22%까지 끌어올렸다.
러시아를 연구개발(R&D) 거점 중 한 곳으로 삼았다는 점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뼈아프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삼성리서치를 통해 서울 포함 전세계 7곳에서 글로벌 인공지능(AI)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 중 모스크바 센터는 전쟁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항공·여행 업계 역시 전쟁 포화속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국내에서 유럽으로 갈 때 평소보다 항로를 우회해야 해 연료비 부담이 늘어난 상태다. 여행사들은 러시아 전쟁 뿐 아니라 이스라엘 무력충돌과 중국의 경기침체 장기화 문제 등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부 지역에서 소모전이 펼쳐지며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특별군사작전(전쟁)의 목표를 바꿀 계획이 없으며 이 목표가 달성돼야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만큼 당장 변화가 생기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를 이룬다.
러시아 측은 다만 외교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측에 공을 돌리는 모습이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안타깝게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며 "양국 관계 회복은 한국에 달려 있다. 러시아는 이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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