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부지.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미국 정부의 약속을 믿고 현지에 수십조원대 투자를 감행한 재계 주요 기업들이 ‘발등 찍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파격적인 보조금을 준다며 각지에 생산시설 등을 유치해놓고 막상 지급 일정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서다. 지원금을 받을지도 미지수인데 올 11월 치러질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근거 조항 자체가 파기될 가능성도 높다.
◇ 북미 투자액 100조원 육박···보조금 지급은 ‘감감무소식’
28일 재계와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 이차전지, 전기차 등 핵심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에 투자를 유도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교훈으로 지나치게 해외에 치중된 제조 기반을 국내로 되돌린다는 차원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새로운 시설을 짓는 기업들에게 대규모 세액공제나 보조금 혜택을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20조원을 넘게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조지아주에 만들고 있는 전기차 생산시설에도 7조3000억원이 넘게 들어간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북미 지역 투자액은 64조원에 이른다.
문제는 공장을 다 지어 가는데 보조금 지급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지원법을 보고 첨단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390억달러(약 52조원)를 보조금으로 돌려주는 게 골자다.
다만 미국 정부는 대부분 투자 기업들에게 대금 지급 일정을 알리지 않고 있다. 자국 기업인 인텔, 마이크론 등에만 일정 금액을 우선적으로 챙겨주기로 했다. 현재까지 170여개 기업이 지원을 받기 위해 신청했으나 2개 업체에만 소규모로 보조금 지원이 이뤄졌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 공장을 만들고 있는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미국 정부에 세액공제 혜택을 신청했지만 답변은 받지 못하고 있다. 최대 30% 공제 혜택을 준다는 해당 조항에 배정된 예산이 100억달러(약 13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보조금이 돌아가면 현대차에 배정되는 금액은 예상보다 크게 적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현대차는 당초 4000억원대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LG엔솔-GM 배터리 합작공장 전경. 연합 |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현지 완성차 기업과 합작사를 다수 만든 배터리 업계는 다른 형태의 고민에 휩싸였다. 미국 정부가 아니라 기업들이 상식 밖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GM은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의 85%를 자신들에게 배당하라고 LG엔솔 측에 최근 요청했다. 합작사 지분 비율은 50대 50이다. 우리 기업들은 IRA를 통해 받고 있는 세액공제 형태 보조금을 이미 작년부터 영업이익에 반영하고 있다. 북미에서 올해와 내년을 기점으로 가동되는 공장은 10곳이 넘는다. 업계에서는 현지 업체들이 최소한 지분율 만큼은 보조금을 배당해달라고 제시할 것으로 본다.
◇ "보조금 지급액 결정" 정부 적극적으로 나서야···‘트럼프 리스크’ 대비도
재계는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 일정을 확정하는 등 약속 이행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만 TSMC 등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기업들은 공장 건설 속도를 조절하고 정부와 한 목소리를 내는 등 상당히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가 몇주 안에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수십억달러 규모 보조금 지급을 결정할 것이라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는 3월7일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국정 연설 전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게 WSJ 측 예상이다.
WSJ는 인텔과 TSMC가 보조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글로벌파운드리도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칫 보조금 지급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정부가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압승한 뒤 유세장에서 춤추며 연설하고 있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고 있다. 연합 |
재계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트럼프 리스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경선 2곳에서 연승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IRA, 반도체지원법 등 정책의 연속성을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IRA 폐기, 전기차 전환 지원 중단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미국의 관세율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보편적 기본관세’ 개념도 현지 수출 물량이 많은 우리 기업들에게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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