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부담으로 인해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고 있는 사이, 더 이상 빌릴 곳도 없고 갚을 길도 없는 한계 대출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450만명이 3곳 이상에서 최대한 대출을 끌어 썼으며, 279만명은 소득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써야 할 처지로 추정된다. 이 같은 금융 취약계층 증가는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국은행의 경고다.
12일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다중채무자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국내 가계대출 다중채무자는 45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로,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차주를 말한다. 이들은 고금리에 가장 취약한 만큼 한은·금융당국의 집중 감시·관리 대상이다.
450만명은 직전 분기(2023년 2분기 448만명)보다 2만명 증가한 역대 최다 기록이다.
다중채무자가 전체 가계대출자(1983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중(22.7%) 또한 사상 최대 수준이다.
다만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568조1000억원)과 1인당 평균 대출액(1억2625만원)은 직전 분기(572조4000억원·1억2785만원) 대비 3개월 사이 각각 4조3000억원, 160만원 감소했다.
각종 지표상 다주채무자들의 상환 능력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대출 한도 및 고금리 등으로 추가 대출을 통한 돌려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5%로 추산됐다. 이는 2019년 3분기(1.5%)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들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58.4%로, 소득의 약 60%를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상황이다.
DSR은 대출받는 사람의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부담이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해당 대출자가 한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보통 당국과 금융기관 등은 DSR이 70% 안팎이면 최소 생계비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득으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상당수 다중채무자의 형편이 한계(70%)의 문턱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 다중채무자의 26.2%(118만명)는 DSR이 70%를 넘었고, 14.2%(64만명)는 100%를 웃돌았다. 갚아야 할 원리금이 소득보다 많다는 뜻이다.
전체 가계대출자로 대상을 넓히면, DSR이 70%를 넘은 차주는 279만명(14.0%·70∼100% 117만명+100% 이상 162만명)에 이른다.
다중채무자 가운데 소득과 신용도까지 낮은 대출자들의 상환 부담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다중채무자를 '취약 차주'로 정의하는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이들은 전체 가계대출자 가운데 6.5%를 차지했다.
직전 분기(6.4%)보다 0.1%포인트(p) 늘어 비중이 2020년 3분기(6.5%) 이후 3년 만에 최대 기록을 세웠다.
3분기 말 현재 취약 차주의 평균 DSR은 63.6%였고, 취약 차주 가운데 35.5%(46만명)의 DSR이 70% 이상이었다. 이들의 대출은 전체 취약 차주 대출액의 65.8%(63조4000억원)를 차지했다.
한은도 지난해 말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취약 차주, 비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취약 부문의 대출 건전성이 저하되고 있다"며 “차주의 DSR이 오르면서 소비 임계 수준을 상회하는 고DSR 차주가 늘어날 경우, 이는 차주의 소비성향 하락으로 이어져 장기에 걸쳐 가계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