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로 시작된 '의료 전쟁'이 장기화 우려를 낳으면서, 정부와 의료계 모두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 가운데 먼저 '대화 움직임'을 보인 것은 4·10 총선을 앞둔 정부 측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서울아산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의료진 간담회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료계를 향해 “정부를 믿고 대화에 나와 달라"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정원 확대 폭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료계 일각 지적에 “증원을 단계적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졌다면 좋겠지만,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역대 정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해 너무 늦어버렸다"며 “매번 이런 진통을 겪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의대) 증원 수를 조정하지 않으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고수하지 마시고,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후배들을 설득해 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의료 개혁 완수를 위해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개선이 필요한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의사와 간호사 여러분들께서 의견을 주셔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간담회는 당초 예정된 시간 2배를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인사들 역시 일제히 이런 '온건 기조'에 힘을 실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서울지역 주요 5개 병원, 이른바 '빅5' 병원 병원장과 간담회를 열고 “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들과 복지부가 직접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서 '증원 규모를 못 줄인다는 입장을 접어야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그 의제에 대해서 저희는 오픈돼 있다"고까지 답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고수하고 있는 '2000명' 선에도 조금이나마 '양보 공간'을 열어둔 것이다.
장 수석은 이에 “저희가 왜 2000명 증원을 결정했는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고, 설득하겠다는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의료계에서 350명, 또 500명 이렇게 하는데 왜 350명이고, 왜 500명인지 그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여지를 거듭 남겼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역시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장 수석은) 의료계가 (정부보다)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면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부연했다.
이런 '대화 의지'에 대한 진정성은 4·10 총선을 앞둔 국정 운영 지지율 상황과도 연관돼 읽힌다.
한국갤럽이 이달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5∼7일) 때보다 3%p 내린 36%였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11∼15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4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2.0%p)한 결과에서도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8.6%로, 일주일 전 조사보다 1.6%p 내렸다.
한국갤럽은 “긍정 평가를 견인하던 '의대 증원'에 대한 언급이 이번 조사에서 줄었다"며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른 우려감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는 '타협 공간'을 열어둔 것과는 별개로 '원칙 기조'는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이끄는 간부들에게 최종 '면허 정지'를 한 데 이어, 이르면 오는 20일께 한덕수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와 함께 의대별 정원 배정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의료체계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마저 가세, 투쟁 강도를 오히려 높이고 있다.
서울대와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각각 회의를 열고 오는 25일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 비대위원장은 이날 “지금의 의료사태를 만든 정부의 책임이 크며, 이 사태를 단기간에 종결시킬 수 있는 것은 사직서 제출이라는 극단적 방법밖에 없다"며 “정부가 만약 이번 주 수요일에 정원 발표를 한다면 도저히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없고 파국"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다만 “(전공의들을) 설득하고 있다"며 “오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그만큼 전공의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을 간과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방 위원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서 '의료 대란'에 대해 국민과 전공의에게 공개 사과를 했지만, 그 책임은 정부에게 물어 '사직서 경고'를 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