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던 소아필수의료 붕괴에 직면해 있다. '소아의료 재난'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향후 10년 이상은 소아의료 재난은 불행하게도 쭉 이어질 것이고, 복구불능의 육아 인프라는 파괴된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파렴치한' 저수가체계와 '과도한' 사법적 제재는 소아필수의료 붕괴의 직접 원인이다.
정부 부처 회의에 참석하면 공무원이 된 의사를 포함한 고위관리들의 소아청소년과(소청과) 특성 이해도가 너무나 부족해 답답할 때가 많다.
소청과가 필수의료인 이유는 소아 질환이 난치성 위중증 질환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질환들이다. 문제는 발생량에 있다. 소아질환의 대부분은 방치하면 진행하여 위중증 혹은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거듭 언급하지만 소아질환은 대량으로 발생한다. 소청과 의사들이 위중증으로 갈 아이들을 쏙쏙 찾아내어 치료하면 대부분 비교적 간단히 종료된다. 마치 산불에 비유할 수 있다. 어이없게도 담배꽁초 같은 작은 불씨로 시작되지 않는가.
소아청소년과 의원, 아동병원 다 같은 병을 치료한다. 취급하는 질환은 같아도 중증도가 다를 뿐이다. 같은 질환을 본다고 해서 역할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희귀한 질환, 위중증으로 진행하는 질환이 섞여 있다.
응급실 뺑뺑이, 후두염 소아 사망은 쉽게 말하자면 '감기로도 사망할 수 있다'는, 대표적 소아필수의료체계의 실패사례다. 소청과 의사의 의료행위가 특별한 게 없다는 이유로 원가 이하의 수가를 강요하고, 생명을 취급하는 진료행위에 과중한 책임을 물린다면 한국의 소아필수의료는 회생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는 계속해 엉뚱한 대책을 들이밀고 있으니 비극은 되풀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가져온 답을 그저 이익단체들의 요구라고 치부해 외면한다면 어린아이들과 부모들만 더 큰 비용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각계 요로에 '소아의료체계 회생'을 위한 제언을 내놓았다. 요약해 보면, △어린이 건강 기본법 제정 △복지부 내 '소아청소년의료과' 신설 △소아환자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 △소아의료기관의 역차등수가제 및 손실보상제도 도입 △소아 준중증환자 관리수가 신설 △병상비율 조정 등이다.
특히, 건강보험 안정화 대책으로 도입됐던 차등수가제를 역차등수가제로 바꾸면 소청과 의사들이 '환자가 줄어 경영난을 걱정하는' 일이 크게 사라질 것이다. 역차등수가제는 75명 이하의 환자를 보면 줄어든 환자수 만큼의 적자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아동병원 유휴병상 손실보상제도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의 제도를 이름만 바꿔서 도입하면 된다. 소아질환의 특성상 유행시기에는 환자 수용이 어려울 정도로 병상이 부족해지고 아닐 때는 병상이 텅텅 빈다. 현재 수가로는 환자를 가득 채워야만 병상 유지가 가능하다. 소청과는 유행시기에 맞춰 병상과 인력을 유지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유행기에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소아의료의 백년설계를 위해 소아의료의 전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복지부 내 소아청소년의료과 신설, 아동건강을 법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어린이건강기본법 제정은 서로 팔다리와 머리에 비유할 수 있다. 어린이건강기본법이 제정돼 기본방향을 제시한다면, 소아청소년의료과는 그에 따른 실천적 제도를 만들어 적용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소아질환이 유행해 치료하는데 '아동 병실이 없어서…', '소청과 의사가 소청과를 포기해 소청과 의사가 없어서…', '2년 넘게 소아 필수약이 없어서…' 등 이런 말이 나오면 절대 안되는 일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이런 말들이 너무나도 당연시 되는 안타깝고 슬픈 현실을 맞고 있다.
소청과 의사들이, 아동병원들이 아픈 아동들을 마음 놓고 최선을 다해 치료할 수 있는 날을 간절히 바라며, 열거된 제안들이 이뤄질 수 있게 힘써 주기를 정책 입안자와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