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물가 인상, 인건비 상승, 국제 원자재값 급등. 건설업 공사비가 처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재건축 등 민간 공사를 지연시키고 있는 공사비 급등 현상이 이젠 공공 부문의 사회 인프라 조성에까지 악영항을 끼치기 시작했다.
◇ 2년간 대형 공공 공사 3분의2 유찰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발주된 300억원 이상 대형 공사 유찰률이 68.8%에 달한다. 2022년부터 지난 1월까지 발주된 공공공사 64건 중 44건이 유찰된 것이다. 유찰은 보통 1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거나 누구도 입찰자체에 참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이전까지 공공 공사 유찰은 흔치 않았다. 시공 능력을 '공인' 받는데다 돈 떼일 일도 없는 안정적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재비와 인건비 등 물가가 폭등한 데다 발주처가 제시한 공사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시공사 입장에선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유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추정 금액 3170억원)는 네 차례나 유찰된 이후 이달 또 재공고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일산 킨텍스 제3전시장(6199억원), 부산 진해신항 방파호(3516억원)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28일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공공공사에 대한 적정공사비 산정 및 물가상승 감안한 공사비 조정 등 대책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큰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시가 발주한 초대형 재난방지 인프라 사업인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공사는 공사비를 약 20%가량 인상하며 DL이앤씨(광화문), 대우건설(도림천), 코오롱글로벌(강남역)이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코오롱글로벌은 원가 대비 공사비가 낮다는 점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의 빗물터널 사업 공사비는 이미 14%가량 감액됐다가 복원된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경직된 예산심의 관행으로 고품질을 요구하는 기술형 입찰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선 더 안전한 공사비가 확보돼야 한다"고 전했다.
◇ 중소형공사, 낮은 공사비 참여 후 손해보는 구조
대형건설사가 공사비 리스크로 사업참여 자체를 안 하는 것이 문제라면, 중소건설사는 저가경쟁으로 사업적자가 우려되는 것이 문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평균낙찰률이 90%를 상회하나 한국은 2000년 이후 여전히 80%~85% 수준이다. 예로 100원짜리 공사가 있다면 일본은 90원에 공사를 하나 한국은 80~85원을 받고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 건설사은 손해를 무릅쓰더라도 일단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낙찰을 받은 후 공사를 마치고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A 중소건설사 대표는 “일단 실적은 올려야 하기에 참여를 하게 되지만 대형건설사처럼 사전에 공사비 손해 유뮤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사업 후 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공 공사에서 적게 편성되는 간접 노무비도 문제다. 현재 편성되는 간접노무비로선 현장소장 1명의 인건비에도 못 미쳐 건설업계가 추가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하기 어려운데다 품질이 좋지 않은 관급자재를 써야 하는 것도 건설업체들의 골칫거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판로지원 취지가 되다보니 경쟁구도가 안돼서 오히려 품질이 떨어지거나 납기가 지연되는 모럴헤저드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기에 법적으로 불가능한데도 납품자가 자재 설치까지 하는 상황에 놓여있어 책임원인 규명도 어려운 실정이다"고 호소했다.
건설협회는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조달청에 공공 공사의 낙찰률 인상(3~5%p)을 건의했다. 간접노무비(일반관리비율)를 6%에서 8%로 상향, 40억원 미만 공사는 관급자재 납품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주택공급과 더불어 SOC 등 인프라 구축 역시 국민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현안인 만큼 인프라 공급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고 품질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적정공사비가 하루 빨리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