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씨엘의 기업 인수자금 모집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투자사 GEM 측의 100억원 투자 의사가 불투명해져 유증 대상자가 변경됐기 때문이다. 실적 개선을 위해서라도 보령바이오파마 인수가 시급한 피씨엘 측은 일단 특수관계자 법인을 대상자로 바꿔 변경 공시를 냈지만, 물 밑에서 또 다른 투자자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피씨엘은 작년 말부터 최초 공시된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5번째 정정공시를 냈다. 기존 제3자배정 대상자였던 GEM이 빠지고 새로운 대상자가 들어왔다는 내용이다.
피씨엘은 작년부터 GEM에서 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고 밝혀왔다. 실제로 김소연 피씨엘 대표이사가 보유주식을 넘기고, 지난 1월 유상증자가 이뤄져 GEM은 피씨엘 지분 529만주를 보유한 2대 주주(10.27%)가 됐다. 금액으로 치면 약 20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그런데 나머지 100억원이 문제다. 이 100억원에 대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이미 작년 12월에 공시가 나왔지만, 올 1분기 내내 일정이 연기됐다. 이번에는 아예 GEM이라는 이름이 빠졌기에 투자가 중단됐다고 해석될 수 있다.
피씨엘 측은 공시를 통해 “최근 지속적인 주가 하락 등으로 GEM의 투자의사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다른 투자자를 물색해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피씨엘 주가는 실적 부진으로 하락 일로에 놓였다. 연초 3785원이었던 주가는 약 6개월 가까이 흐르는 시간 동안 70%가량 빠져 1000원선을 넘나들고 있다. 이날은 반등해 1070원에 마감했지만, 전날에는 900원대로 '동전주' 상태였다.
면역진단용 체외진단기 개발·제조 기업인 피씨엘은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진단키트 매출이 폭등, 연 매출 537억원을 기록했다. 기존 사상 최대치(10억원)의 50배가 넘는 외형 성장이다.
그러나 2021년 매출 461억원, 2022년 372억원으로 규모가 점점 줄더니, 엔데믹이 본격화된 2023년에는 84억원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2020년 흑자 전환했던 영업이익·순이익도 2021년 적자로 돌아서 현재까지 지속 중이다.
이 시기 진단키트 생산에만 집중한 결과 현금은 줄고, 재고만 늘어난 것이 적자 규모를 키웠다. 부족한 현금을 막기 위해 자금조달에 집중한 결과 2020년 68억원에 불과했던 부채 규모가 2021년 627억원까지 증가했으며, 작년 말 기준으로도 246억원어치가 남았다. 수십억원대 이자비용도 발생하지만 영업적자가 지속돼 이를 갚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김소연 대표의 선택은 기업 인수였다. 작년부터 보령그룹 산하 백신 전문업체 보령바이오파마를 인수하기 위한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접촉한 곳 중 하나가 GEM으로, 300억원 중 200억원은 들어왔지만 남은 100억원의 자금은 기약이 없게 됐다.
이미 피씨엘은 보령바이오파마 인수과정에서 자금 납입 문제로 여러 번 차질을 빚어왔다. 일각에서는 이미 피씨엘 측의 보령의 신뢰를 잃어 인수전에서 배제됐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충분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인수 의지를 밝혀왔는데, 이번에 다시 GEM 측의 자금 유치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어떻게 돌파구를 모색할지 행보가 주목된다.
이번 정정공시로 GEM 대신 새로 제3자배정 대상자에 오른 곳은 제이에스앤파트너스다. 공시에 따르면 자기자본 3억원이며, 이지원·이승현 씨가 각각 지분 33.4%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 규모도 그렇지만 이지원·이승현 씨는 각각 1999년생, 2007년생인 김소연 대표의 자녀다. 사실상 유증 계획을 유지하기 위해 특수관계인을 내세우고 그사이 또 다른 투자자를 찾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피씨엘 측도 공시를 통해 향후 계획을 밝히며 “투자 가능한 다른 투자자와 협의 중이며, 일반 투자자의 투자가치 제고에 노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