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11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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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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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서 위급한 생명 살리는 ‘태아내시경 수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8.11 15:21

쌍태아 수혈증후군, 일란성 쌍둥이 10~15%서 발생

내시경 레이저로 태아끼리 연결된 비정상 혈관 없애

후부요도 판막증은 태아션트수술…국소 마취로 시행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이미영 교수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이미영 교수(왼쪽 첫 번째)와 원혜성 교수(가운데)가 쌍태아 수혈증후군 치료를 위해 태아내시경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결혼 7년 차인 A씨(38)는 여러 차례 체외수정 끝에 쌍둥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임신 20주차 때 복통이 찾아와 검사를 받았고, 쌍태아 수혈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즉 태반 내에서 비정상적으로 연결된 혈관을 통해 한 태아에서 다른 태아로 혈액이 공급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때문에 한쪽 태아는 성장이 늦어지고 다른 쪽 태아는 양수과다로 심장기능이 떨어져 쌍둥이 모두가 위험했다. A씨는 다니던 산부인과 의사의 의뢰에 따라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를 방문해 응급 태아내시경 수술을 받았다. 태아들의 상태는 급격히 호전됐고, 임신 35주차에 건강한 여자 일란성 쌍둥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고위험 임신으로 분류되는 만 35세 이상 고령 임신에서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과 같은 보조생식술이 발달함에 따라 쌍둥이 임신이 늘어나는 추세다. 체외수정에서는 여러 개의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기 때문에 다태아 임신이 흔히 발생한다.


고령 임신과 다태아 임신 같은 고위험 임신은 상대적으로 조산 확률이 높고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도 있어 임신 초기부터 출산까지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산전 진단과 태아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쌍태아 수혈증후군, 태아 후부요도 판막증, 태아 대동맥판막협착증 등 건강에 이상이 발견된 태아도 엄마 뱃속에서 조기에 치료를 통해 완치까지도 가능해졌다.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에 따르면, 쌍태아 수혈증후군은 일란성 쌍태아의 10∼15%에서 나타난다. 태반 내 비정상적으로 연결된 혈관을 통해 한 쪽 태아에서 다른 태아로 혈액이 공급되며 발생한다.


한 쪽 태아는 혈액이 부족해 성장저하와 양수부족을 겪고 다른 태아는 혈액 과다로 심장기능이 떨어진다. 치료하지 않으면 90% 이상에서 쌍둥이 모두 사망해 쌍둥이 임신의 가장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치료는 태아내시경에 달린 레이저를 이용해 양쪽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혈관을 없애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쌍태아 수혈증후군, 방치하면 90% 이상 쌍둥이 모두 사망


태아내시경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양수과다 증상을 보이는 태아 쪽의 양수를 반복적으로 제거해 산모의 증상과 태아 상태를 일시적으로 호전시키고 조기 진통을 예방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원혜성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소장(산부인과 교수)은 “태아내시경을 통한 쌍태아 수혈증후군 치료는 태아 간의 혈류 연결을 차단함으로써 두 태아 모두를 살리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라며 “국내에 도입된 후 높은 성공률을 보이며 안전한 수술로 자리매김 해왔다"고 말했다.


쌍태아 수혈증후군에 대한 태아내시경 수술은 고난이도에 속한다.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 인정을 받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우선 양쪽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혈관을 없애기 위해 엄마의 배꼽을 통해 자궁 안에 태아내시경을 삽입한다.


그 다음 혈관 상태를 관찰하면서 레이저로 혈관 사이에 흐르는 혈액을 응고시켜 태아간의 혈류 연결을 차단한다. 이 과정은 약 30분 이내로 진행된다. 레이저 치료가 끝나면 늘어나 있는 양수를 빼내 압력을 낮춰주는 치료가 15분 정도 이뤄진다. 보통 1시간 이내면 모든 치료가 끝난다.


대동맥판막협착증도 태아 풍선확장술로 치료…태아 수혈까지

임신 20주 전후 산전 초음파 검사에서 발견되는 태아 대동맥판막협착증도 엄마 뱃속에서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원혜성 교수(맨 왼쪽) 선천성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풍선확장술 시행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원혜성 교수(맨 왼쪽)가 선천성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태아에게 풍선확장술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심장의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를 연결하는 문인 대동맥판막이 좁아지고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아 심장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풍선확장술을 통해 좁아진 대동맥판막을 넓히는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시술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면 심장기능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해 출생 후 추가적인 심장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


고위험 임신에서 후부요도 판막증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이 질환은 태아의 방광 입구에 있는 판막이 두꺼워져 요도로 소변이 배출되지 못하는 질환으로 남자 태아에게서 비교적 흔히 발생한다. 태아 단계에서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방광 내 소변이 신장으로 역류해 신장 기능을 망가뜨려 생존까지 위협한다.


◇임신 기간 동안 정기 검진 꾸준히…20주엔 정밀초음파 필수


치료는 태아의 방광과 양수 사이에 션트(작은 관)를 삽입해 소변이 양수 내로 배출되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산모의 피부를 국소 마취해 시행하므로 산모의 부담도 크지 않고 분만 시까지 신장 기능을 정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태아가 혈액이 부족한 경우에는 몸이 전반적으로 붓고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심부전이 발생할 수 있다. 빈혈이 심하면 태반에 부착된 탯줄 혈관에 바늘을 꽂아 수혈을 하게 된다. 수혈이 잘 시행되면 태아가 정상 기능을 회복할 수 있으며 완치도 가능하다. 원혜성 소장은 “임신 기간에 정기 검진을 꾸준히 받고, 이상이 확인된 경우에는 포기하지 않고 태아치료 등 적절한 조치를 시행한다면 큰 문제없이 건강한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아기형을 예방하고 줄이려면 임신 전에 만성질환 여부를 확인하고 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유전이나 환경뿐 아니라 비만, 당뇨 같은 질환이 태아의 기형과 큰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20주가 되면 정밀초음파 검사를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산 전에 기형 여부를 진단하는 방법은 초음파 검사, 혈액 검사, 양수 검사, 융모막 검사 등 크게 4가지다. 특히 임신 20~24주에 시행하는 정밀 초음파 검사는 선천성 심장질환, 다낭성 신장질환 등 진단에 유용하다. 상당수 선천성 기형은 태아 시기에 치료가 가능해졌다. 선천성 횡경막 탈장, 선천성 낭종이형성증, 선천성 요로 폐쇄증, 천미골 기형, 수막 척수류, 복벽기형, 쌍생아 간 수혈 증후군 등이 태아 수술의 주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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