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을 본업으로 한 주요 그룹들의 위기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유통그룹인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각각 일진머티리얼즈와 지마켓(G마켓)을 인수하며 변화를 모색했지만, 되살아나지 못하는 중이다. 부채 부담이 늘어나면서 신용등급 강등 리스크도 겹쳐있는 만큼, 비상경영을 통한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이 이뤄져야한다는 평가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가 최근 내놓은 '주요 그룹 재무역량 및 경기대응력 점검'에서 국내 주요 10대 그룹 중 유통그룹인 롯데와 신세계그룹의 재무부담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는 재무 커버리지(4.96배) 비율(상환 여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높을수록 재무건전성 악화)가 높고, 레버리지(보유 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가 35.1%로 가이드라인을 넘어섰다.
특히 롯데그룹은 10대 그룹 중 커버리지(2023년 7.08배)와 레버리지(30.0%)가 높아 재무부담이 가장 컸다. 커버리지와 레버리지 비율 등 재무지표 가이드라인은 신용평가방법론상 순차입금과 이자비용, 세금, 감가상각비를 빼기 전 순이익이다. 커버리지는 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으로, 레버리지는 차입금의존도로 대표된다. 두 지표가 높다는 것은 부채는 많고 상환 능력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현재 가이드는 영업활동 현금창출력 지표 3.5배, 차입금의존도 35%가 기준이다. 롯데그룹은 롯데와 신세계그룹의 차입금 의존도는 2021년부터 줄곧 30%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그룹의 재무 대응력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이들의 주력 사업의 업황이 부진한 이유가 가장 크다. 사업 확장과 신사업 확대를 위해 인지도가 있는 기업들을 인수했지만, 인수대금을 회수도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롯데그룹은 2021년부터 일진머티리얼즈(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2조7000억원)과 한국미니스톱(3134억원), 한샘(2995억원), 중고나라(300억원) 등을 인수했지만, 적자상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한 롯데케미칼의 2분기 기준 순손실은 10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4% 증가했다.
신세계그룹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쿠팡과 네이버 쇼핑에 밀리는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국내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은 지난달 기준 네이버쇼핑(42%)이 1위다. 2위와 3위는 각각 쿠팡(16%), 11번가(13%) 순이다.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G마켓(12%)은 4위이며, 신세계그룹이 보유한 옥션과 SSG닷컴의 점유율을 합쳐도 쿠팡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올해 신용등급도 하향조정됐다. 올해 3월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내려잡은 것이다. 이에 자금조달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마트는 자금조달을 위해 지난달 5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마트가 국내 사모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2011년 이마트가 신세계 대형마트 부문의 인적 분할 이후 발행한 회사채는 전부 공모채였다. 사모채는 증권사를 통해 투자자만 확보되면 수요예측이나 증권신고서 제출 등이 면제된다.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와 신세계그룹은 쇼핑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온·오프라인 경쟁력이 하락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온라인 확장이나 신사업 추진보다 본연의 주력 경쟁력 제고에 집중할 때라고 조언했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내수 성장률 둔화와 경쟁 심화 등으로 유통산업의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변화된 소비패턴에 부합하는 경쟁력 구축과 비용효율화 성과 등을 향후 각 기업의 신용등급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국내 유통그룹이 안정적인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선 신사업 추진보다는 본업 경쟁력 제고에 집중하고 점포 구조조정, 구매·물류 통합 등을 통한 비용효율화를 추진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