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분야 공약 중 핵심은 ‘脫원전’이다. 정책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고리 1호기 영구정지 등 몇 차례 공적인 자리에서 탈원전 방침을 재확인했다.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고,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폐지한다는 것이다. 새로 원전을 짓지 않으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를 제외하곤 수십 년 내에 원전은 모두 사라진다. 물론 신고리 5·6호기 건설도 현재로선 반반이다.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본지는 우리나라에서 脫원전 정책 확정 이후 에너지와 전원정책 그리고 사회 전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영향이 있을지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물론 예측이다. 올해부터 시작해 60여 년 동안 원전이 한 두기씩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전망이다.
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53)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작심한 듯 "탈원전 정책 강행은 기존정책에 대한 존중 결여, 국민 기만, 눈가리기 공포마케팅"이라고 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동대학원 원자핵공학과 출신으로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국무총리실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 위원, 한국연구재단 원자력단 단장, 산업통상자원부 방사성폐기물 관리비용 산정위원회 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정책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교수는 원자력계에서도 소문난 ‘강경파’다.
‘재는’ 게 없다. 그만큼 소신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이 180도 바뀌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라며 "다음 정권에서 문제가 생겨도 그 정책은 책임지겠다는 마인드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원전’의 ‘탈’자만 들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몸을 떠는 정 교수. 그에겐 중간 중간 따로 질문이 필요 없었다.
◇ 기존 정책 존중 결여·정책 지속성 실종·원자력산업 죽이기
"정부가 바뀌었다 해서 정책이 180도 바뀌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정책이 지속성과 혁신성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7차까지의 전력수급계획 역시 밀실에서 소수의 전력 전문가들이 만든 게 아니라 민간참여, 공청회 등 충분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참여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세운 계획 전체를 ‘적폐’로 여기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숙의 과정을 거친 정책들은 내팽개치고 선거를 도운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공약을 우선시 하는 게 과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나?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돼야 하는 정책이 있다. 식량, 보건, 환경, 교육, 에너지 등이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2000년대 토니 블레어 총리 당시 수립한 에너지 정책이 집권당이 보수당에서 연합당으로 바뀌고 총리가 네 번 바뀌는 와중에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정책도 오랜 사회적 숙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고작, 그것도 일방적으로 3개월만에 탈원전을 추진하는 과정은 충격적이다. 물론 겉으로는 민주적으로 보인다. 나라다운 나라라면 정책의 지속성, 합리성,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가장 큰 화두라면서 정작 온실가스 저감에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원전을 폐기하겠다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왜 원전을 통한 탄소배출 저감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그럴 경우 신재생에너지가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서다. 결국 원전 산업을 접는 형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산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산업을 살리기는커녕 저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 가짜 뉴스로 국민 기만, '눈가리기'
"현재 원자력과 관련한 가짜뉴스들은 대표적으로 ‘경제성, 원전확대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폈다’, ‘값싼 전력으로 전력화가 심화됐다’. ‘공급보다 수요관리 측면의 정책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속이는 눈가리기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대로 믿는 것 같다. 경제성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다는 것은 기존 에너지정책 관련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때는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안보, 기술, 안정성, 환경성 등의 가치들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기준과 잣대를 돈, 경제성 등으로 환산한 것인데 이걸 돈만 보고 만들었다고 매도하는 것이다. 원전 확대 위주 전력정책을 만들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kW당 발전단가가 원자력 55원, 석탄 70원, LNG 150원, 신재생 250원이다. 또한 작년 에너지 수입액이 1700억달러인데 그 중 우라늄은 10억달러 밖에 안된다. 이처럼 원전은 국산 에너지로의 가치도 있고 가격도 매우 저렴하지만 비중은 30% 수준이다. 원전 확대 위주 정책을 펼 것 같았으면 발전단가가 가장 저렴하니 기저발전을 원자력으로 다 채우는 게 맞지 않나?
그럼에도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해 에너지원별 균형을 맞춰 설계한 것인데 원전 위주의 정책을 폈다고 몰아가고 있다. 또한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면 그에 맞게 수정하면 되는 것인데 갑자기 ‘원자력은 나쁜 것’, ‘신재생에너지는 좋은 것’이라고 이념화하는 것 같다. 에코파시즘적 행태다. 이념화는 사회 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안보적인 측면도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 발전용 연료 비축분은 석탄은 20일, lng는 60일, 석유는 130일, 우라늄은 42개월이다. 탈원전은 이를 다 포기하는 것이다."
◇ 5000원 내고 커피 마시는 시대, 전기요금 때문에 더위·추위 참아라?
"부하관리, 수요관리 위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목표는 항상 있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자동차 10부제나 냉난방 온도 규제는 무모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절약이란 사치품 소비를 줄이는 것이지 필수품을 아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시대에 폭염 속에서 에어컨 요금을 몇 천원 아끼는 것 중 무엇이 더 필수적인 요소인가?
차량 10부제도 서울이나 수도권은 대중교통 등 대체 교통수단이 많다. 그러나 지방은 자가용 승용차로만 갈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그런 곳에서 10부제는 차를 목적지에 가지고 온 다음 ‘담 밖에만 주차하는’ 비효율만 양산할 것이다. 또한 지금은 전기가 전산 등 모든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회사 안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인건비가 얼만 데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그들더러 더위와 추위를 참으며 일하게 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거지로 부하관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수요관리는 현명하게 해야 한다."
◇ 에너지 정책은 R&D가 아니다
"지금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올리고, 원전·석탄 배제하면 전기 값이 얼마나 올라가느냐에 대해 말이 많다. 현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되는데 ‘점진적으로 변하니까 내년에는 얼마 안 오른다. 기술발전이 돼서 효율이 더 좋아질 것이다. 당장 원전을 폐쇄 하자는 게 아니지 않느냐.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산업용이 오를 거다’고 한다.
에너지원별 가격도 마찬가지다.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 나라마다 다른데 ‘어느 나라에서는 저렴해서 괜찮다’고 호도한다. 미국에서는 셰일가스가 많아진 데다 경기 침체로 가스 소비가 줄어 가스 값이 만이 낮아졌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원자력이 가장 저렴하다. 나라마다 다른 건데 자꾸 다른 나라 얘기를 들이민다. 이건 기만이다. 눈을 가리고 현혹한다. 전력수급은 연구개발(R&D)이 아니다. 몇십년 후에 개발된다고 현재 전력수급계획에 넣을 수는 없다. 지금 가능한 방법을 계획에 넣어야 한다. 그래서 2년마다 새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아닌가. 나중에 싸질테니까 지금 계획에 넣는다는 것은 소설이다.
신재생에너지 전력망 지능화에 얼마나 들어갈지도 수치가 나온 게 없다. 전력수요 전망도 과소예측으로 보인다. 국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지금은 가리고 가고 있다. 원자력에 대한 위험성도 과장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쓰나미로 집이 없어져 피난간 것이다. 원전에서의 사망자나 부상자는 없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인명 피해인데 이걸 무조건 원전 때문이라고 몰아간다. 쓰리마일아일랜드(TMI)도 사고 때도 방사능유출로 사람이 죽지 않았다. 일종의 ‘공포마케팅’이다. 팩트는 원전사고를 경험한 나라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신고리 5·6호기 보다 탈원전 자체를 먼저 공론화해야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해서만 공론화한다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다. 그 절차도 대의 민주주의에 따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논의를 해야지 일부 시민배심원단이 결정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일종의 쇼에 불과하다. 국가 경영에는 책임성이 필요하다. 과거 3차 전력수급에서 2020년 전력수요를 78GW로 예측했다. 그런데 2016년에는 85GW로 올랐다.
에너지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이다. 원전, 석탄, 신재생에너지 등의 발전원들은 수단일 뿐이다. 수급 안정성을 담보한 다음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원전·석탄 안 하려고 수요를 적게 예측하고 진행중인 공사를 중단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다음정권에서 문제가 생겨도 내 정권에서 결정한 것이니 책임지겠다’는 마인드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