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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영국의 에너지 정책이 주는 교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8.23 09:42

정범진 경희대 교수



영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선도국가였다. 일찍이 원자력을 연구했고 원전의 설계에서 해체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경험했다. 핵무기와 핵잠수함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은 1946년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듬해 열출력 3 kW의 공랭식 흑연원자로를 운영했다. 1956년 세계최초의 상용 원전인 콜더홀(Calder Hall)을 가동했다. 이후 26기의 마그녹스형(Magnox) 발전소와 14기의 신형가스냉각로(AGR)를 지었다. 대처수상 시절인 1980년대 가압경수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1987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94년 준공했다. 그러나 3기의 후속기 건설은 취소되고 그 이후 영국내 원전건설은 지속되지 않았다.

1990년대 진행된 전력산업의 민영화는 효율화를 표방하였지만 실은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재원조달에 기여했다. 발전, 송전, 배전이 분할되면서 대형수퍼마켓 체인점이 엄청난 구매력으로 생산자를 압박하듯이 배전사업자는 발전사업자를 압박했고 발전사업자는 신규투자를 하지 못하고 기존 발전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전기는 천연가스발전소를 지어 공급받았다. 천연가스발전소는 건설기간이 짧아 원전에 비해 단기간에 투자가 회수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은 대중이 선호하지 않았다. 근원적인 이유는 영국의 원자력 산업이 핵무기개발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2002년 영국에너지백서는 에너지효율향상과 재생에너지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국제공동연구의 참여 등을 통해 기술력을 유지할 필요성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2003년 에너지백서 역시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전원이지만 경제성이 없으며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이유로 원전 건설계획은 적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에너지백서에서 토니블레어 총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저감을 위해서 신규 원전 건설이 최선의 길임을 받아들였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1997년 대비 20% 감축하고 2050년까지 80% 감축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반발도 심했다. 2007 고등법원은 2006년 에너지정책이 잘못되었다고 그린피스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었다. 또 2007년 영국정부가 신규원전 건설의 기회를 민간영역에 주겠다는 계획에도 그린피스,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 등 환경단체는 정부 정책에 극렬히 반대했다. 심지어 스코틀랜드 정부조차 스코틀랜드내의 신규원전 건설에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북해유전이 고갈되고 이산화탄소 감축목표의 달성이 난망한데다가 영국에서 가동중인 석탄발전소는 EU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폐쇄되고 원전마저 1기의 가압경수로를 제외하고 2023년까지 15기가 모두 폐쇄될 상황에 처했다. 결국 영국은 16GWe를 신규원전으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은 토니블레어를 수반으로 하는 노동당 정부에서부터 입안되었으나 4명의 수상이 교체되고 집권당이 보수당으로 교체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영국국민과 국회는 신규원전 건설을 국익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있으며 야당인 민주당(Liberal Democrat)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의원들이 지지선언을 한 바 있다.

문제는 원전건설을 멈췄던 30년간 영국이 원전 건설을 위한 기술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정책적 실수였다. 결국 외국자본과 외국기술 의해서 원전을 건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프랑스전력공사(EdF), 히타치, 도시바 등 외국자본과 외국기술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느라 현재 영국내 전기값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장해주면서까지 원전건설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같은 정책적 실수를 답습하려고 하고 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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