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 |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 국정감사 일정을 모두 마친 국회가 본격적인 예산심사에 착수하면서 건설산업계는 내년도 SOC예산이 실제로 얼마나 줄어들지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미 정부가 내년도 SOC예산을 올해보다 20%이상 줄여 발표한 17조 7천억원으로 편성한 것으로 발표한 후 건설업체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내년도 공공공사 수주난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의 SOC예산 감축은 비단 공공공사 발주의 감소만으로 그치지 않고, 일선 발주기관의 공사비 부당삭감의 관행도 더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채산성 악화로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의 한숨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10여년간 영업이익율이 10분의 1수준으로 대폭 감소햇고, 공공공사만을 수행하는 업체수의 약 30%이상이 매년 적자를 보이며, 지역의 공공공사를 주로하는 토목업체수의 약 40%에 육박하는 1621개사가 폐업하는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도 얼마나 더 악화돼야 한다는 말인가?
지난 70년간 국가경제 성장의 중추산업이었다는 화려한 수식어가 무색하게 우리 건설산업은 당장의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때로는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때로는 일자리 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건설산업 정책은 하수급인과 근로자 보호를 위한 종합건설업체의 희생과 양보를 주문하면서도 공공발주기관의 무리한 공사비 삭감 및 추가비용 미지급 등 불공정한 거래관행은 눈감으면서 오늘도 우리 건설산업계는 피멍이 들어가고 있다.
지난 11월 7일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 6인이 공동으로 주최한 ‘일자리 창출방안 모색을 위한 공사비 정상화 정책토론회’에 약 800명의 건설업체 대표 및 관계자들이 운집했던 것은 공사비 정상화를 위한 그 열망의 정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날 발제자들과 다수의 토론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공사비 거품제거라면서 10여년간 품셈기준을 하향하고, 과거 준공된 공사단가를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장단가(구 실적공사비단가) 제도를 도입해놓고는 17년간 고정된 낙찰율(적격심사제도)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저가 경쟁에 의한 덤핑입찰(종합심사낙찰제)을 유도하는 현재의 공공발주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발주기관이 충실한 설계를 바탕으로 적정한 기준을 통해 정확하게 공사원가를 산정했다면 현재와 같이 예정가격 결정에 이르기까지 공사비 사정이라는 이름하에 수차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공사비 삭감의 관행은 근절돼야 할 것이며, 그동안 진행된 실질낙찰율 하락 및 실행 공사원가의 상승을 고려할 때 최소 10%이상 낙찰율 상향이 필요하다는 건설업체들의 목소리를 정책당국자들이 귀담아 들어야만 한다.
아울러, 공사 설계에 대한 발주기관의 책임을 등한시 한 채 설계변경과 계약상대자 책임 없는 공기연장의 리스크를 계약상대자에게 전가하는 그릇된 행태에서 비롯된 발주기관별 수십 건씩의 소송 등 분쟁을 해결하고, 방지하기 위한 관련 기준의 정비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새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일자리 창출’과 ‘노동복지’는 단순히 종합건설업체에 대한 쥐어 짜기식 정책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공공 발주체계의 최정점에 있는 공공발주기관이 제대로된 공사비 지급을 회피하면서 어떻게 더 낳은 일자리가 나오고, 제대로 된 하도급대금과 임금의 지급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맹자(孟子) 양혜왕상편(梁惠王上篇)에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역하면 “일정한 생산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로, 백성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왕이 기본적 생업을 보장해 주어야 백성의 안정된 마음을 잡아 둘 수 있다는 뜻이다. 왕이 백성에게 안정된 생업을 만들어 주지 않고 백성이 죄에 빠진 후에야 벌을 주는 것은 법망에 걸려들도록 그물질(網民)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강한 변론인 것이다.
공사내용에 턱없이 못 미치는 공사비를 책정하고, 저가에 수주한 건설업체에게 품질과 안전시공, 하수급인과 근로자 보호 등의 명분으로 다양한 규제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국가가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그물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겠다.
이제 건설산업계는 수행하는 공사내용에 걸맞게 제대로 된 공사비를 지급받기만을 원할 뿐이다.
공정한 거래의 요구는 민간 뿐 아니라 공공부문에도 해당되는 요구라는 점을 정책입안자와 발주기관들이 인식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