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장사 '한계기업'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어 향후 산업·금융계에 미칠 파장이 클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코스닥 시장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는 등 부실기업 솎아내기에 나선 가운데 국회에서는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상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6일 '주요국 상장사 한계기업 추이 분석'을 통해 한국 한계기업 비중이 최근 코스닥 업체를 중심으로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1 미만인 기업을 뜻한다. '일시적 한계기업'은 당해 연도 이자보상배율이 1 아래인 곳이다.
한경협 조사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한국을 대상으로 펼쳐졌다. 이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19.5%로 나타났다. 미국(25.0%)에 이어 주요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한계기업 비중 변화를 살펴보면 2016년 7.2%에서 지난해 3분기 19.5%로 12.3% 포인트(p) 증가했다. 이 역시 미국(15.8%p↑)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증가폭이 컸다. 미국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당시 기업대출이 크게 증가한 상태에서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영국(6.9%p, 6.7%→ 13.6%) △프랑스(5.4%p, 14.0%→19.4%) △일본(2.3%p, 1.7%→4.0%) △독일(1.6%p, 17.1%→18.7%)은 상대적으로 증가율이 낮았다.
한경협은 한국의 한계기업이 주요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한 것은 경기부진 장기화에 따른 판매부진·재고증가로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데 기인한 것으로 봤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일시적 한계기업 비중은 36.4%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37.3%)보다는 낮으나 프랑스(32.5%), 독일(30.9%), 영국(22.0%), 일본(12.3%) 등 주요국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특히 코스닥의 한계기업 비중은 23.7%로 코스피 10.9%에 비해 12.8%p 높았다.
업종별로는 '부동산업'(33.3%),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24.7%), '도매 및 소매업'(24.6%), '정보통신업'(24.2%) 순이었다.
재계는 주요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한계기업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강력한 '채찍'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코스닥을 중심으로 기업 상장유지 요건을 강화하고 상장폐지가 바로 가능하도록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등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등도 이에 보폭을 맞춘 정책·규제를 내놓을 방침이다.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여지가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혼란에 표류했던 해당 법안을 최근 다시 꺼내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경영계는 소송 남발과 이사회의 경영권 위축 등을 이유로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대응 여력이 낮은 한계기업들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대목이 더 생겨나는 셈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미 금융당국의 제재로 코스닥만의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강력한 퇴출 조치로 시장이 위축되면 우수 기업들도 자진 상폐를 하거나 다른나라 증시로 옮겨갈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무조건 상폐' 같은 강경책 보다는 코넥스 시장과 연계를 도모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국내기업들은 극심한 내수부진과 트럼프 2.0에 따른 수출 불확실성으로 경영압박이 크게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직면한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 글로벌경쟁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상법개정 논의는 지양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