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제도개선위원장 |
전라남도 영광이 풍력발전 특화지역으로 발표됐다. 10여 년 전부터 영광지역에는 백수해안과 서해안에 풍력단지가 대규모로 들어서고 이어서 태양광 사업도 간척지에 규모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생산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공격적인 기업들이 현지 주민들을 민원해결사로 고용해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을 마을 앞 농토와 염전 등에 세워나간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겪었던 전형적인 개발방식이 농촌 에너지 사업에 적용된 것이다. 토지주 중심으로 일시 보상금을 지급하고 마을단위 보상금을 지급해 주민 간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사업은 도시 재개발과 재건축에서 봐온 방식 그대로이다.
돈 되는 일에 초토화되는 농촌마을의 붕괴현상이 영광지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2018년 여름 영광군 월평마을에서도 이와 같은 마을 붕괴의 위험을 느낀 주민 몇 명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들의 마을이 풍력과 태양광사업으로 분열되고 훼손될 위기에 있으니 좋은 해법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스스로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의지를 굳히면 기술적인 부분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곧바로 마을주민들을 모아와 설명회를 요청했다. 주민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안겨줄 것인지에 관심을 보이며 모여들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주민들을 긴 호흡으로 단합하게 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마을이 가진 자연조건과 주민 분포와 욕구를 살펴 장기적인 마을 비전을 제시했다. 에너지 생산을 통해서 얻게 되는 수익으로 마을 재생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에 호응한 대다수 주민이 협동조합을 결성하기로 결의했다. 3개월 후 마을주민 40여 명이 모여 ‘월평에너지주민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사회를 구성하고 사무소를 염산면 버스터미널 2층에 열었다. 근처 여러 주민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에 사무소를 연 것이다.
젊은 에너지 활동가를 서울에서 초빙했다. 의욕적인 활동가 덕분에 협동조합 업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활동가가 지역 사무실을 지키지 않더라도 업무가 잘 이어지도록 지역주민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가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먼저 조합원을 교육하고 매월 이사회를 진행해 조합원인 주민 스스로 모든 결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자도 잘 해줬고 바쁜 농사철에도 교육에 참여하는 등 날로 인식수준이 높아져 갔다.
전남녹색에너지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전문가 교육과 경영컨설팅도 했다.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과 업무협약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고, 서울에너지공사와도 업무협약을 해 지원체제를 구축했다. 당장 태양광 사업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서 우선 주민공동체 사업을 진행해 주민이 협동조합의 실체를 확인하도록 하고 주민결속을 다져나갔다.
올해까지 조합총회를 경험해 보며 스스로 조합운영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사업 대상지인 마을 앞 간척지를 대상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해보기로하고 사업타당성조사 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30만 평(약 9억9174㎡)의 농지에 약 60㎿ 태양광시설을 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 냈다. 하지만 국유지 임대와 전력계통 문제라는 큰 난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사업 장래가 불투명해지자 주민들이 사업성공을 확신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합 임원들은 스스로 학습을 해가면서 주도적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다. 주변 재생에너지 시공업체에서는 모든 사업권을 넘겨주면 주민보상을 해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해왔지만, 조합원들은 역량을 키워가며 업체선정에 나서는 과정까지 오게 됐다. 다행히 정부의 그린뉴딜정책이 속속 발표되면서 부지수용문제와 계통문제도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합은 경비를 줄이고 증자를 하면서 헤쳐나가고 있다.
이 조합을 통해서 나는 비로소 시민참여형(또는 주민주도형) 에너지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 주민들이 일시적 보상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에너지 협동조합을 통해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설비에 참여하며 관리운영에까지 이른다면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장기적으로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는 마을단위 기본소득까지도 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재인 태양과 바람으로 만들어 내는 공유경제 즉, 사회적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부의 그린뉴딜정책이 이렇게 세밀하게 주민들의 삶에까지 이르도록 제도를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런 자생적인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한다. 결코 큰 비용이 드는 사업이 아니다. 민간이 스스로 자신들의 소득을 만들어 내는 사회적경제가 바로 에너지 협동조합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