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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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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온실가스 배출목표 ‘고무줄’?…'2050 탄소중립용' 유엔 제출 4개월만에 또 상향 추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4.25 12:42

구체적 대책 없이 목표치만 상향, 탈원전과 탈탄소 공존 가능한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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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이서연 기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문재인 대통령의 추가 상향 계획 발표로 고무줄 정책 논란을 낳고 있다.

정부가 고심 끝에 마련해 지난해 말 유엔에 겨우 제출한 NDC를 불과 4개월도 안돼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로 한 게 문제로 꼽힌다.

NDC 추가 상향이 이미 예고된 것이고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불가피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이처럼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에 대해 산업계는 물론 정부 및 공공기관 내에서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목표 수립의 현실성, 정책의 신뢰성 문제를 넘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배출권에서 민감한 이해관계에 있는 산업계 등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잇따라 주먹구구식 공허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가뜩이나 글로벌 생존 경쟁에 내몰린 산업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조업 기반의 에너지 다(多) 소비 산업 구조인 우리나라 형편에서 성장을 포기하지 않고는 이루기 쉽지 않은 ‘2050 탄소중립’ 비전에 집착해 지나치게 의지 만 앞세워 구체적인 실행계획 없이 NDC 목표를 단기간에 또 올리겠다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25일 전문가 등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지난 22일 열린 40개국 참여 기후정상회의 때 문 대통령의 연설이 계기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국은 지난해 NDC를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하기로 했다"며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를 담아 NDC를 추가 상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말 유엔에 NDC를 제출할 때 오는 2025년 전까지 NDC 추가 상향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추가 상향 시기를 연내로 공식 못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유엔에 NDC로 제출한 2030년 배출량은 5억3600만톤이다. 지난 2017년 배출량(7억910만톤)보다 24.4% 감축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에 수립한 목표와 비슷한 수치다. 문 대통령은 2030년 배출량을 지난해 유엔 제출 NDC의 5억3600만톤보다 더 낮추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신뢰해주지 않는 속빈 강정"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아무도 신뢰해주지 않는 속빈 강정이다"며 "계획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 실행목표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을 늘리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데 이런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간헐성이 극심하기 때문에 보완하기 위해서는 LNG(액화천연가스) 화력발전소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겉으로는 신재생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LNG 주도형 전력수급이다"며 "LNG발전은 장기간 연속가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대 기저전력으로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번 탄소중립 선언도 속 빈 강정이었는데 이번 선언 역시 넉 달 전 발표했던 내용을 강조한 것 뿐"이라고 일침했다.

 

"탄소배출 감축 핵심은 속도와 비용"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은 "현재 배출권 거래 3차 계획이 가장 난감한데 이를 손보지 않고 4차부터 계획을 변경한다면 4차부터 너무 과격하게 할당돼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3차 계획을 취소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2030목표가 가능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물론 방향성은 좋지만 우리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한 실행력과 사회적 합의를 거쳤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은 전기료에 0.4%의 배출권 가격이 부여되는지 잘 모르는데 앞으로 상향시켜 부여한다고 했을 때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건지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탄소배출 감축에서 핵심은 속도와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센터장은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최근 2년 동안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이 10% 줄었다고 발표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줄어든 것"이라며 "엄청난 감축 노력을 해서 줄인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성우 고려대 기후환경학과 겸임교수는 "4개월 전의 상향조정은 산정방식을 절대감축량으로 바꾼 것"이라며 "무빙타겟을 확실한 픽스넘버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부가 얼마나 진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민단체, 기업,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정상 움직임 외면할 수 없는 조치"

 


일각에서는 이번 NDC 추가 상향 계획을 밝힌 문 대통령 연설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기후재앙 위기감 확산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노력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는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2℃이상 상승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글로벌 국가간 ‘파리기후협약’ 시행 원년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 정상들이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온실가스 목표치를 일제히 올린 것도 이런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번 기후정상회담을 이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지난 2005년 목표치의 2배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영국도 지난해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53%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최소 68% 감축으로 상향 조정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이런 글로벌 정상들의 움직임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NDC 상향을 추진하는 등 NDC 상향은 피할 수 없는 국제적인 흐름"이라며 "NDC 상향을 연내 조속히 확정해야 탄소중립 방향성에 부합하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의 안정적 이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상황 측면에서 문 대통령의 연설을 고육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후 관련 정상회의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서울 정상회의’가 다음달 30일부터 이틀간 예정돼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대응, 백신 확보 등을 위한 미국 등과 경제 및 안보 실리외교의 필요성도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갈 길 먼 ‘2050 탄소중립’ 실현 불가피성도"

 


문 대통령 연설의 배경엔 정부의 당초 유엔제출 NDC 자체로는 ‘2050 탄소중립’으로 가는 데 역부족이란 판단도 깔렸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정부가 당초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2017년보다 24.4% 감축하겠다고 한 것은 2010년 대비 18.5% 감축하는 것에 불과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50년 탄소중립(실질적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 중간 목표치로 권고한 45%에 한참 못 미친다. 정부가 지난해 말 유엔에 NDC를 제출하면서 2025년 이전 NDC 상향 적극 검토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2050 탄소중립을 위한 감축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 시나리오를 토대로 NDC 상향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런 결정은 국제적 흐름과 이해관계자 간의 사회적 합의 등 국내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우리나라가 IPCC가 권고한 대로 45% 수준까지 감축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상향 수준을 논의하기 이르다"며 "사회, 경제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상향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렵사리 겨우 만든 전기본, 또 뜯어고쳐야" 

 


그러나 에너지업계에서는 NDC가 바뀌면 당장 NDC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전력수급기본계획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에너지 전환의 기본 골격을 담고 있다. 15년 단위 정부계획으로 계획기간이 지난해부터 2034년까지였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진통 끝에 지난해 말에야 확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계획은 당초 계획기간 시작 이전인 지난 2019년 마련돼야 하지만 계획기간 1년 경과 후 뒤늦게 수립된 것이다. 계획 수립이 이처럼 지연된 데엔 정부의 탈석탄·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 정책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2050 탄소중립’을 전격 선언한 것도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지난해 유엔 제출 NDC를 한창 만들 때 문 대통령이 느닷없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앞서 추진했던 NDC 초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yeonie@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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