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주요 통화인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의 가치 추락으로 아시아 외환외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외신의 경고가 나왔다. 두 국가의 시장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이들의 통화가치 급락이 아시아 전체에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한국 원화 등의 통화가 가장 취약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26일 블룸버그통신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통화 2개의 가치가 달러 강세에 무너지면서 금융위기 수준의 리스크가 재연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엔화 환율은 최근 장중에서 1달러당 145.9엔까지 올라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고 위안화의 경우 환율이 ‘1달러=7위안’을 웃도는 이른바 ‘포치(破七)’ 현상이 이달 발생했다. 이번 포치는 약 2년 2개월 만이다.
이처럼 두 국가의 통화가치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핵심적인 원인은 미국과의 금리격차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제로(0)에서 3.00%∼3.25%로 올렸다. 연준은 올 연말, 내년까지 기준금리를 각각 4.4%, 4.6% 수준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는 일본은 금리를 인상할 여력이 없고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중국간 금리 격차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의 경우 당국이 엔화 가치 부양을 위해 24년여 만에 외환 개입에 나섰지만 엔화 가치 추락을 지연시키는 효과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엔화와 위안화 약세가 아시아 전체의 투자 매력도를 실추시키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영향력이 높은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 하락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공포를 키워 외국인들의 전체 자금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13년 동안 동남아 국가들과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했고 세계 3위 경제국인 일본은 주요 자본 및 신용 수출국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중국 위안화가 아시아 통화국 지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을 넘고 일본 엔화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거래되고 있어 가치 하락에 따른 위기가 아시가 국가들에게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16일까지 4주 연속 투자자금을 유출했고, 그 규모는 4억 2300만 달러(약 5876억원)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올해 아시아 신흥국 증시의 자금 유출 규모는 총 640억 달러(약 88조원)에 달해 작년을 이미 넘어섰다.
미즈호 은행의 비슈누 바라단 경제 및 전략 총괄은 "위안화와 엔화는 지역에서 큰 닻이며 이들의 약세는 아시아 무역과 투자에 있어 통화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리스크가 있다"며 "일부 측면에서는 금융위기 수준의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있는데 약세가 심화될 경우 아시아 외환위기가 다음 단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DBS 그룹의 타이무르 바이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리스크가 금리보다 더 큰 위협"이라며 "아시아는 수출국이어서 거대한 부수적 피해가 없더라도 1997년, 1998년(외환위기)이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뇌관도 다양하다. 골드만삭스의 최고 환율 이코노미스트로 지낸 짐 오 네일은 엔화 환율이 달러당 150엔까지 급등하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수준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일정 수준보단 통화가치 하락 폭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번 엔화와 위안화 약세로 한국 등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맥쿼리 캐피털의 한 전략가는 "한국 원화, 필리핀 페소, 태국 바트 등 경상수지 적자 상태에 있는 통화가 가장 취약할 것"이라며 "엔화와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압박은 달러 매수, 신흥국 통화 익스포져에 대한 헤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낙관론도 제기됐다. 블룸버그는 "리스크는 존재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후반과 달리 훨씬 더 강력한 위치에 있다"며 "외환 보유고도 많고 달러 차입에 대한 익스포져도 낮다"고 짚었다.
한편, 26일 원달러 환율은 1420원을 돌파했다. 환율이 장중 1420원을 넘어선 것은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3월 31일(고가 기준 1422.0원) 이후 약 13년 6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