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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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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규제 개혁] 유럽 규제기관, 정치와 분리됐지만 비싸진 전기료는 '소비자 몫'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06 11:09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심화로 인해 전기요금 현실화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현 전기요금 결정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로 ‘에너지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 강화’,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을 내세웠다.

현재 전기위원회 중심의 전력산업 규제체계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기위원회가 산업부 내 행정조직으로 심의기구에 불과해 전기요금이 재무적 근거가 보다는 정책적,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실정이다. 비전문적 의사결정으로 인한 전기요금의 왜곡은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초래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의 시장진입도 저해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선진국들은 정치권과 분리된 독립적인 에너지시장, 요금 규제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위원들도 각 분야 (전력/가스 산업, 경제학, 소비자 정책, 재무 및 투자 등)에서 상당한 경험을 보유한 인력에서 선발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국내 전기요금 결정구조의 실태를 알리고 해외사례에서 해법을 찾고자 ‘에너지 규제 거버넌스, 글로벌 스탠다드 따라가자’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모았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국내 실태·대책

② 해외사례-영국·프랑스·독일

③ 해외사례-미국

④ 해외사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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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기·가스 규제기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영국 시민들.

[에너지경제신문 김연숙 기자] ◇영국 가스전력시장규제국 ‘Ofgem’…정부와 의회로부터 분리된 규제기관

전기요금 결정권을 갖는 에너지 규제기관을 설치,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다.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 산하에 설치된 가스전력시장규제국(Ofgem, 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이 정부와 의회로부터 독립적인 기관으로 운영된다.

Ofgem 내에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Gas and Electricity Market Authority)가 있어 Ofgem을 감독하고 책임을 진다.

GEMA는 전력 및 가스 산업 규제 정책의 전체적인 방향과 전략을 설정하고 주요 정책적 이슈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위원회다.

Ofgem은 GEMA가 수립한 규제정책의 방향, 전략 및 의사결정의 범위 내에서 유틸리티 규제를 직접 수행한다.

GEMA는 6개월 단위로 전기요금 가격상한에 대한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 실질적인 에너지요금 결정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사업자를 심사해 영업면허를 발급 또는 거부하거나 기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시장에 대한 신규 사업자 진입규제 권한도 갖는다.

면허를 받은 사업자가 면허조건을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발급한 면허를 취소하거나 갱신을 거부할 수도 있다.

도매경쟁 촉진을 위한 시장 변화도 꾀할 수 있다.

GEMA는 전력 도매시장 가격을 모니터링하고 시장지배력의 남용 행위나 사업자의 전략적 행동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감독한다.

판매사업자가 도산할 경우 1개 이상의 비상공급사업자(SOLR, Supplier Of Last Resort)를 지정, 소비자를 보호하는 소매경쟁 감독권도 GEMA에 있다.

전력공급자가 지켜야 하는 서비스 조건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전력공급자가 소비자에게 배상하도록 규제할 수 있으며 △국가 간 전력망 연결 및 해상 송전망의 입찰 프로세스 관리 △배전사업과 판매사업 간의 회계 분리를 규제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 설계 및 집행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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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에너지규제위원회 ‘CRE’.

◇프랑스 에너지규제위원회 ‘CRE’…송배전망 이용요금·소매요금 중 표준(규제)요금에 대한 가격규제

프랑스는 EU의 1997년 제1차 전력 자유화 지침(European Directive)에 따라 2000년에 전력자유화법 제정한데 이어 법안 내 규제당국인 에너지규제위원회(CRE, Commission de Regulation de L’Energie)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CRE 2000년 에너지부(MEDDE) 산하기관으로 설립됐으나 2001년 독립행정청으로 변경했다. 설립 초기에는 전력시장에 대해서만 규제 권한이 있었으나, 2003년 가스시장으로 권한이 확장됐다.

CRE는 송배전망 이용요금 및 소매요금 중 표준(규제)요금에 대한 가격규제 정책을 시행한다. 규제요금에 대한 조정안을 6개월 단위로 에너지부(MEDDE) 장관에게 제안하며, 3개월 안에 장관의 반대가 없으면 제안대로 확정되는 구조다.

표준(규제)요금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요금 상한을 제시하는데, 표준(규제)요금제 외의 자유요금제 및 쌍무계약에 의한 거래는 가격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신 에너지 판매사업자는 송배전망 이용요금, 세금 및 부담금을 제외한 부분의 요금 및 할인조건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CRE는 전력·가스망 이용요금 결정 및 △모든 공급자의 전력가스망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보장하는 업무 △연간 망 투자계획 수립 및 시장설계, 원자력 발전가격 통제 △탄소배출권 거래감시, 경쟁 활성화를 위한 시장 감시 역할 등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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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네트워크기구 ‘BNetzA’…송배전망 이용요금 가격규제

독일은 연방네트워크기구(BNetzA)가 전력산업 규제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송배전망 이용요금에 대해서만 가격규제를 시행한다.

BNetzA는 연방 경제·에너지부(BMWi) 산하에 있지만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는 혼합적 독립 행정기관으로 분류돼 독립적인 규제권한을 갖는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기관장은 임기 5년의 연임이 가능하며, 부기관장은 2인 10개 실무부서와 별도의 11개 결정위원회로 구성된다.

실무부서는 분야별로 규제와 관련된 경제적, 법적 이슈를 분석해 결정위원회의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결정위원회는 △신재생 부과금 △전력망 규제 △전력망 요금 △소매시장 업무 등을 수행하며, BNetzA 구성원 중 3인을 연방 경제·에너지부(BMWi)장관이 임명한다.

BNetzA는 연방 규제를 담당하면서 송배전망 이용요금과 대규모 기업들 위주로 규제를 하고, 고객수 10만호 미만 및 지역단위 사업자는 주(州) 규제기관에서 규제한다.

BNetzA가 내린 최종결정 사안에 대해서는 감독기관인 BMWi에서도 번복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BNetzA는 △망 개방 정책 및 이용요금 책정 △시장 모니터링 △법률 △경제 △국제협력 등 총 11개의 기능별 담당 부서를 운영 중이다.

결정위원회별로 3명의 위원이 사법부와 유사한 방식인 합의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다.

독일은 2007년 소매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소매요금에 대한 규제를 폐지했으며, 정부 당국은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서만 관리·감독권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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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 위치한 가스전력시장규제국 ‘Ofgem’ 전경.

◇시장원리 입각한 독립 규제기관 역할 비상 시 ‘한계’…공공·시장 균형 갖춰야

각국 기관은 국제 에너지 시세를 그대로 반영한 에너지 가격책정을 원칙으로 한다.

국제 원료가격이 오르면 오른 만큼 가격에 반영하고 하락하면 하락 분만큼 반영한 뒤, 여기에 에너지 기업 운영 시 발생하는 비용(인건비, 관리비 등)과 이익 등을 더해 전기 및 가스요금을 책정한다.

각 에너지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원료비 등락폭을 그대로 반영하고 일정부분 수익까지 보장되는 규제기관의 책정 가격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

문제는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따른 시장변화에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한가이다. 큰 폭의 가격 변동요인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 요금부담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요금) 충격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규제기관이 책정한 에너지 가격이 과하다는 판단이 들 경우에는 정부가 직접 조정에 나선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에너지 가격상한제(Energy Price Cap)를 시행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상한은 전력·가스 공급자가 소비자에 부과할 수 있는 요율 상한을 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영국에서는 최근 1년 6개월간 에너지 요금 상한이 2.5배 상승했다. 지난 1월 가스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29.4%, 전기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66.7%씩 각각 상승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일반 가정에 적용되는 에너지 가격상한을 2~3인 가구 기준 연간 2500파운드에서 약 3000파운드(약 480만원) 수준으로 인상 조정했다. 2~3인 가구에 대해 전력·가스 공급자가 소비자에 부과하는 에너지 가격을 최대 3000파운드 이상 부과하지 말라는 의미다.

대신 에너지 공급기업은 최대 3000파운드까지 요금을 부과, 징수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다.

규제기관이 정한 실제 에너지 가격과 정부가 규정하는 에너지 가격상한 사이의 갭은 정부가 에너지 기업에 간접 지원하는 형태로 해소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기준 중기예산 기준 약 127억8000만파운드(약 19조6000억원)의 예산을 에너지 기업에 지원한 바 있다. 에너지 기업들이 소비자 요금으로 받지 못하는 가격분을 기업에 직접 지원해 준 셈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에너지 가격상한 시행으로 영국 정부가 에너지 기업에 지원하는 예산 규모는 약 247억8000만파운드(약 38조원)으로 추정된다.

영국 정부는 올해 4월 1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1년간 에너지 가격상한을 연장 시행키로 한 상태다.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금 보조가 이뤄진다.

지난 동절기 위기 당시 영국은 약 800만 가구에 해당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보조금을 기존 650파운드에서 900파운드로 인상하고 연금생활가구 및 장애인가구에는 각각 300파운드, 150파운드씩 지원했다.

난방유, 액화석유가스(LPG), 석탄 등 대체연료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한 지원은 기존 100파운드에서 200파운드로 2배 인상했으며 영국 정부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지원을 위해 약 122억6000만파운드(18조8000억원)의 예산을 소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외에도 영국 정부는 기업, 자선단체, 공공부문에 대한 보편적 지원 및 에너지 요금 할인대책 등을 시행하며 폭등한 에너지 가격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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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시내에 모여 지나친 물가상승에 생활고를 호소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난방이냐 음식이냐(Heat or Eat)…배곯아도 난방 포기 못해

전쟁 등으로 과도하게 인상된 국제 에너지 원료비를 그대로 반영한 규제기관의 가격 책정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가격 상한제 등 다양한 지원제도 시행에 나서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난방비 부담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직장인 캐런(36세)씨는 "영국은 전기, 가스 시장이 완전히 민영화가 되어 있고, 에너지 요금은 규제기관에서 국제 원료비 가격 시세를 반영해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부가 에너지 요금에 캡을 씌워도 애초에 규제기관에서 정하는 가격 자체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전체 생활비에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캐런씨는 "다만, 지난 동절기 과도하게 폭등했던 요금은 현재는 어느 정도 진정된 수준"이라면서 "또 다시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 등으로 과도한 에너지 요금 인상요인이 발생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주영한국대사관 측에 따르면 영국 현지에서 지난 2월 실시한 조사 결과 성인의 약 79%는 가스 또는 전기요금 상승으로 전달 생활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46%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기 매우 또는 다소 어렵다는 응답을 내놨다.

성인의 약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48%는 올 겨울에 집 난방이 매우 또는 다소 걱정된다고 응답했고, 에너지 요금 상승으로 인해 성인 10명 중 약 6명(57%)는 생활비 증가로 인해 연료 사용을 줄인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난방비 상승에 따른 ‘에너지 위기(Energy Crisis)’ ‘생활비 위기(Cost of Crisis)’ 논란도 등장했다.

원료비 인상폭이 그대로 요금에 반영되는 구조의 가격 책정이 시장원리에는 부합하지만, 영국 에너지 소비자가 체감하는 충격은 난방과 음식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영국 푸드 파운데이션(Food Foundation)에 따르면 지난 동절기 에너지 비용 상승을 포함한 물가 상승으로 인해 영국 내 5개 가구 중 1개 가구는 식량 위기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첫 주보다도 배를 곯은 인구가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난방과 음식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음식 소비(eat)를 포기하고 난방(heat)을 선택하는 가구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식량 위기를 겪은 가정 중 2/3는 에너지 비용 절감을 위해 음식을 덜 조리하거나 냉장고 전원을 꺼둔다고 응답했다.

개인뿐만 아니라 550만 개의 일반 영세기업이 치솟는 에너지 비용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심각한 부작용도 초래됐다.

영국 정부는 에너지 가격상한 시행으로 에너지 기업이 받아야 하는 소비자 요금 축소 분만큼 예산으로 지원해 준 대신,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에너지 요금 경감대책은 오히려 축소했다.

이에 따라 영국 소상공인연합회는 중소기업 4개 중 1개는 폐업, 규모 축소 또는 구조조정을 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영국 런던 찰턴( Charlton) 지역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P씨의 경우 지난해 8월까지 매월 450파운드(약 67만5000원) 수준이었던 에너지 요금이 한 달 만에 약 2200파운드(약 1140만원) 수준으로 4배 가량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런던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K씨(현지 3년 이상 거주)는 한국과 달리 정치적으로 분리된 에너지규제기관을 운영하며 에너지 요금을 직접 책정하고 있는 현재 영국의 상황이 ‘에너지 선진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생각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갸우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동절기 영국 현지에서 전기, 가스 가격 폭등 현상을 겪고 나자 너무 혼란스러웠다"며 "에너지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품인데 이를 부담하기 위해 생활비 위기를 겪을 정도가 된다는 것은 일반 시민 입장에서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정부에서 에너지 기업에 대한 간접지원 등을 하며 최악의 상황은 막는다고 하지만, 과도한 에너지(원료비) 요금 인상분 대부분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는 지속되고 있다"며 "이는 결코 최상의 선택일 수 없다"고 전했다.

결국 정답은 없었다.

비싼 가격에 원료비를 도입하고도 정치적 논리가 가미되면서 우리 에너지 공기업의 밑지는 장사를 지속하도록 하느냐, 아니면 에너지 가격 인상이 빤히 예상되지만 시장원리에 입각한 시스템 정비를 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가 치러야 할 몫으로 남는다.
you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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